오늘 아침은 쫓기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광화문 근처에 대규모 시위로 근방의 교통이 거의 마비가 되었고 사람들이 대안으로 지하철로 출근을 하는 사람에 평소보다 2배는 사람이 더 많았다.
광화문 거리 세종 대왕 앞에는 장송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투를 틀고 검은 상복을 차려입은 대한 유교 협회 사람들은 장송곡을 부르며 열을 맞춰서 슬피 울었다. 행렬이 진행되는 곳곳에는 흰 종이에 묵으로 큰 글씨로 “한국의 예가 사라졌다.” “예의, 전통, 역사가 죽었다.”라고 적혀 있었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하극상. 정부는 책임져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슬픈 곡조에 맞춰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검은 기운의 대한 유교 협회 시위 현장 반대편에는 자유롭게 옷을 입고 무지개 컬러의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시위를 하고 있었다. 피켓에 대충 갈겨 쓴 글씨들이 곳곳에 보였다.
“권위주의를 탈피하라.” “꼰대 out”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과 형형색색의 옷은 무리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슬픈 장송곡과 힙합 노래가 같이 흘러나왔다. 젊은이들의 무리 중에서 한 명이 튀어나왔다. 바지를 거의 허벅지까지 내려 입고, 공들여 염색한 보라색 머리를 하고 목덜미와 손가락에 다양한 문신을 한 청년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꼰대 아웃’을 선창하자 젊은이들이 ‘꼰대 아웃’을 따라 외쳤다. 갑자기 소리가 커지자 장례 의식을 치르던 대한 유교 협회의 수장이 앞으로 나온 남자의 피켓을 빼앗아 무릎으로 부러뜨렸다.
“예의범절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이런 상 꼰대를 봤나. 시발.”
“이 상것이 어디서 욕지거리야.”
우연히도 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둘 다 머리가 길다는 것이었다. 둘은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둘을 뜯어말리러 온 사람들도 싸움에 가세하면서 세종대왕 동상 앞은 난장판이 되었다. 검은색과 무지개 컬러가 서로 뒤엉키면서 상관을 이루었고 외신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 댔다. 평정심을 지키는 것은 세종대왕 동상뿐이었다.
이지경의 의지와 상관없이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서, 출근길 옆 사람이 보는 휴대전화를 통해서 이런 초유의 사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위험해지는 상황이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다. 간신히 회사에 도착해서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혹시나 거짓말처럼 이런 현상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존댓말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회의를 최소화했지만, 오후 회의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안건이었다. 온라인 프로모션 팀원들이 회의하고 있는데 정곤대 부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정곤대 부장은 다급하게 부장은 전화를 받았다. 평소에는 무음으로 전화를 해놓거나 회의 때는 전화를 잘 거절하는 그였지만 전화번호 앞자리를 보고 군부대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것을 알고 부득이하게 전화를 받았다. 뉴스에서 이번 사태로 가장 위험한 곳이 군대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곤대 부장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첫째 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응, 내가 정주찬 아빠야.”
군에서 걸려 온 전화라는 것을 알고 모두 숨죽이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 보려고 노력했다. 정곤대 부장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 응. 이라고만 연신 대답했다. 그러다가 조금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은 좀 괜찮다는 거지?”
“알았어. 곧 찾아가도록 할게.”
전화를 끊고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누군가 정말 이 몹쓸 바이러스를 만들었어. 군부대는 난리가 났대.”
“정말? 주찬이는 괜찮대?”
진정해 차장은 정곤대 아들 주찬이의 안부를 물었다. 진정해 차장도 아들을 가진 부모라서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응,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나 봐. 옆 부대는 좀 심하게 다친 일이병들이 많대. 병장들이 반말을 듣고 눈이 돌아간 애들이 많다더라고.”
“하, 이게 회사보다 군대 같은 곳이 더 문제구나.”
송사리 과장은 자신이 오래전에 군대를 제대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내에서도 워낙 충격이 컸던지라 다른 분야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장 권위주의가 강했던 군대에서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아침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곧 제대를 앞둔 박병장은 정주찬 일병에게 말을 걸었다.
“야, 정 일병 거기 있는 리모컨 좀 가지고 와봐.”
“이 리모컨 말이야? 홉.” 정주찬은 입을 틀어막았다.
“뭐? 야 말이 왜 이리 짧아? 나 곧 나간다고 막 나가자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내 마음대로 안돼.”
정주찬은 고개를 저으면서 입을 막았다. 내무반은 순간 고요해졌다. 그리고 화가 난 병장은 리모컨을 던졌고 정주찬 일병 이마를 수직으로 맞히고 땅에 떨어졌다. 이마가 찢어져서 피가 눈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지 않고 박병장은 정주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
“막장이네. 이 새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시발, 이 새끼가.”
바로 손이 바로 나갔다.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상병들과 이병들이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가 버린 박병장을 말리려다 얼굴을 맞았다. 박병장은 제대를 앞두고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해서 감정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서로 말려보려고 하다가 내무반은 엉망이 되었고 모두 다 나동그라져서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때 방송이 흘러나온 것이다.
(방송) 비상상황을 알린다. 지금 존댓말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퍼지고 있다. 모두 흥분하지 말고 자리에서 대기하라.
정곤대의 아들 정주찬은 군 병원에 입대해 있었다. 군에서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마를 20바늘 정도는 꿰매는 수술을 진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정곤대가 면회를 오면 말해주려고 전화상으로 말을 아낀 것이었다. 이번 일은 불가항력인 현상인지 모르고 개인적인 반항으로 오해해서 생긴 일이었고, 정주찬 일병이 복무하는 곳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서 이 사건의 책임을 따져 묻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옆 부대에서는 서로 심하게 구타하여 얼굴 뼈까지 으스러진 사례도 있어서 정주찬의 사건은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정곤대 부장은 애지중지하는 아들의 폭행 사건으로 일상에서의 불안감이 증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