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바이러스

by 고밀도

이지경은 컵라면에 물을 붓고 김치를 보관한 커다란 락앤락 통을 통째로 들고 와서 TV 앞에 앉았다. 밥을 제대로 차려 먹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퇴근길이 너무 막혀서 평소보다 1시간이나 길에다 시간을 쏟았다. 허기가 지고 지쳐 있었다. 라면을 기다리는 동안 TV를 켰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오늘 발생한 ‘존댓말 실종 사건’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심지어 특집 방송까지 발 빠르게 준비해서 내보는 것을 보고 그들의 임기응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지경의 휴대전화는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연신 울려대고 있었다. 저마다 오늘 겪었던 황당한 일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지선] 하극상이 일어나고 있어. 우리 팀 막내가 오늘 반말을 해서 나 깜짝 놀랐잖아. 아무리 바이러스 현상이라고 해도 너무 열 받는 거 있지?


[다정] 나는 너무 통쾌해. 가끔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진짜 이뤄졌나 봐. 나는 이대로 쭉 가도 괜찮다고 봐.


[지경] 막내의 처지로서 나도 찬성이오! 후배가 들어오면 생각이 바뀔 수 있음! ㅋㅋㅋ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니 오늘의 사건들도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낮에 혹시나 자신의 혼잣말이 이 사태를 불러왔을 거라는 가설은 스스로 기각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망상에 빠지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듯 중국에서 만들어낸 기묘한 바이러스라는 의견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JTVC에서는 특집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어학자, 사회학자, 동북아시아 문화 중에 한국을 연구하는 미국인 박사까지 4명의 패널과 사회자가 토론을 시작했다. 마치 다른 나라 언어를 번역해주듯이 공손하게 다듬어진 존댓말이 자막으로 나왔다. 문자로는 여전히 예전처럼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제임스 박사(동북아시아 연구교수) :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언어문화에 집중했었어. 특히 윗사람을 존중하는 유교 문화를 유심히 봤는데, 그 취지는 아주 좋아 보였어. 하지만 조선을 거치고, 현대 사회로 오면서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형성되었어. 어른들의 책임과 의무는 희미해지고 대신 권위주의는 강하게 남게 된 거야. 그 이유 중 하나가 존댓말이 원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었거든.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니까 존댓말, 반말로 상하 관계를 구분 짓는 거지. 지금 이 현상이 아주 흥미로워. 아마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가 완전히 뒤흔들릴 거야.


김치료 박사(질병 청) : 이번 사태가 일종의 바이러스일 수도 있어서 질병 청에서는 발 빠르게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혈액을 확보하고 있어.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펴보는 중이야.


이지경의 회사에서도 유일하게 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기획팀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불리는 김진국 대리였다.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고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워낙 사람이 좋고 인성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번 사태에도 김진국 대리는 당황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곤란한 말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고 전화를 대신 받아 주기도 했다. 김진국 대리는 정부의 속보를 보고 자발적으로 혈액 기부를 신청했다. 하루빨리 이 혼란을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기부자의 편의를 위해서 정부에서는 무증상자가 있는 사무실까지 직접 방문하여 정중하게 혈액을 채취해갔다. 정부는 성인 중에 유증상자와 무증상자의 혈액을 표본으로 확보해서 정밀 검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최근 바이러스를 비껴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꼰대와는 정반대의 문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가설 중 하나였다. 초등학생들은 거의 이 반말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중고등 학생들도 소수의 학생만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춘기에 접어든 중고등 학생 유증상자들은 일부러 바이러스에 걸린 척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놓았다. 아이들은 불가항력의 반말 증상이 나타나는 이 현상을 밈으로 만들어 틱톡과 유튜브에 올리며 깔깔대면서 웃는 시간이 많았다.


외국언론들도 기이한 이 현상이 발생한 한국의 상황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의 언어문화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은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한국어 배울 때 존댓말 존나, 아 아니 엄청 어려웠어. 이제 조금 쉽게 한국어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반가워.”


정부는 이 상태가 계속될 경우, 국어 교과서 및 한국어 능력 시험, 각종 문서에 대해서도 예산을 투입해서 개선해야 했기 때문에 시름은 깊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이 사태가 발생하자 사회 곳곳에서는 온갖 갈등과 싸움이 벌어져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에 출동할 경찰들이 부족했다. 경찰청을 비롯해 경찰서, 방범대에서도 반말로 인해 혼돈 상태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군에서는 더욱 심각한 폭행 사건들이 발생해서 국민의 불안감을 고조되고 있었다.


이지경이 라면을 다 먹고 밥을 말아서 먹을 무렵, 청와대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몇 년 전JTVC를 퇴사하고 청와대 대변인으로 들어가 유여한 대변인이었다. 평소에 얼굴로 청와대 대변인을 뽑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은 화려한 외모에 유려한 말솜씨를 가진 능력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고 UHD TV로 보니 오른쪽 입술의 상처를 메이크업으로 덮은 것이 미묘하게 보였다. TV 화질이 좋아져서 이제는 모공까지도 숨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메이크업으로 저런 상처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에 이지경은 헛웃음이 났다. 어제 아침부터 카톡에는 찌라시가 돌고 있었다.


[찌라시] 청와대 대변인, 반말하다가 대통령에게 귀싸대기 맞음. 출처 아는 사람이 청와대 출입 기자임.


찌라시가 진짜였나 보다. 현장에 있던 대한일보의 용감한 기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들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제일 먼저 던졌다.


“혹시 왼쪽 입술 옆의 상처는 맞아서 생긴 거야?”


당황한 표정의 유여한 청와대 대변인은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아, 아니야. 요즘 너무 피곤해서 입술이 터졌을 뿐이야.”


“반말했다고 대통령이 폭행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건 진짜가 아닌 거지?”


“응, 그런 일은 없었어. 자, 다음 질문.”


유여한은 다급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지경은 이번 사태를 통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대접받고 싶어 하는지, 한국에 권위주의가 얼마나 추악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아무리 위로 올라가도 그런 권위 의식은 갖지 않을 수 있다고,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컵라면에 말았던 밥까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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