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캐처의 비밀

by 고밀도

존댓말이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 현상은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도로에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언성을 높여서 싸우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해서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감정을 표출하고 지르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지경의 사무실은 일주일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했다. 예전에는 거래처와 전화도 활발히 하고 자리에 있는 테이블에서 간이 회의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고요했다. 사무실이 고요하니 반말로 전화를 하거나 반말로 질문을 하는 작은 목소리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될 수 있는 대로 혼자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최소한만의 필요한 말만 했다. 반말 속에서도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지만,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가지 생긴 요령은 구두로 지시하는 일보다 메신저나 메일로 업무요청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바이러스로 추정한다고 말하는 이 현상은 구두로 내뱉은 음성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았지만, 글씨를 쓰거나 디지털 문서에서는 자유롭게 존댓말과 반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의사전달이 명확해졌다. 전에는 구두로 대충 설명하면서 일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문자로 전달하다 보니 의사전달이 한 층 명확했다. 옆 부서의 한 신입사원은 머리를 써서 디지털 파일로 타이핑을 하고 TTS 프로그램(Text-to-Speech)을 활용하여 상사들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처음 이 시도를 했을 때 사무실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한 단어씩 끊어 읽는 AI 음성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부장님, 방금 말씀하신 것이 오늘까지 예산 정리를 해서 보고해달라는 것 맞습니까?”


신입사원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옆 부서의 부장들이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후배들의 반말을 듣는 것보다는 AI를 한 번 거친 존댓말을 듣는 것이 기분이 덜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광고계에서는 새로 찍는 광고에 대해서는 TTS를 활용한 내래이션 활용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고객들에게 반말을 내보낼 수가 없어서 10월에 잡혀 있던 광고 촬영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무기한 연기하고 있었다. 기존의 찍어 둔 커머셜 광고만이 반복적으로 방송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문어와 구어가 이렇게 달라질 경우 문어체는 결국 구어를 따라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문어체들을 잘 보존해야 한다며 존댓말보존연구회를 설립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혼돈 속에서 매일 새롭게 떠오는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분주한 10월을 보내고 있었다.


정곤대 부장은 아들을 면회를 다녀오고 난 뒤로는 더욱더 힘들어 보였다. 늘 자신감이 넘쳐서 일을 벌이던 정곤대 부장은 멍한 표정을 보일 때가 많았다. 빨리 제대할 방법이 있는지 사방팔방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군부대의 폭력 사태가 심각해서 정주찬 일병 정도의 상처라면 다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에서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병력을 확보해 놔야 하기 때문이었다.


불편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평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신촌 돼지 껍데기 집인데, 손님 지갑 놓고 갔어. 요즘 정신없어서 연락이 늦어서. 미안해.”


“어머나, 고마워. 늦게라도 연락해 줘서. 내가 오늘 저녁에 찾으러 갈게.”


그러고 보니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이지경도 혼란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 알아채지도 못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지경이라서 늘 안에다가 쪽지를 넣어서 다녔다.


[쪽지] 물건 주인입니다. 습득하시면 제발 연락해주세요. 복 받으실 거예요!


이지경은 서둘러 퇴근길에 올라 신촌으로 향했다. 신촌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대학생들은 그동안 교수님이나 선배들한테 받았던 압박을 자유롭게 풀어내서 홀가분해 보였다. 표정이 어두운 사람들은 교수거나 복학생들이었다. 신입생들은 신이 나서 밤마다 신촌의 거리를 채웠다.


이지경은 친절하지만, 반말을 하는 사장으로부터 지갑을 받아 들고 자신도 친절하지만, 반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멋쩍게 하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지경은 많은 생각에 잠겨 지하철로 향하고 있었다.


‘이게 해결이 안 되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정말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구나. 코로나보다 더한 게 올 줄이야.’


그때 일주일 전에 드림캐처를 판매했던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이지경은 재빨리 아이를 따라잡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지경보다 10cm 정도 작은 키였다.


“저기!”


아이는 이지경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처음 얼굴을 보았다. 얼굴을 봤는데 이지경이 생각하던 남자아이가 아니었다. 노인이었다. 그날은 취하기도 했고 둘 다 쪼그려 앉아 있는 상태인 데다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맨정신으로 보니 눈가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그날 입었던 옷과 모자가 똑같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아, 그때 드림캐처?”


걸걸한 목소리만은 그대로였다.


“어머, 아이가 아니었네.”


“그거 어떻게 사용하고 사용 있어?”


“책상에 걸어 두고 집이랑 차에도 걸었지. 근데 그거 소원을 들어주는 거라고 했잖아. 그거 진짜야?”


“그때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하니까 막 뛰어가서 설명을 못 해줬지. 내가 말했잖아. 소원을 이뤄주는 거라고. 나는 거짓말은 안 하거든. 근데 이미 하나 썼던데?”


“그게 설마 나의 혼잣말 때문이었어?”


“소원을 비는 방법은 드림캐처를 흔들면서 소원을 비는 거야. 혼잣말이든 마음의 소리든 그 흔들리는 순간 당신의 말이 소원이 되는 거야.”


“말도 안 돼. “


“그게 효력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싸게 준거야. 나머지 두 개는 신중하게 써봐. 그래도 뭐 재미있는 소원이었어.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재미있단 말이야.”


“효력이 얼마나 남은 건데?”


“딱 2주 남았어. 이미 일주일은 지나갔으니 이제 딱 일주일 남았지. 곧 보름달이 되는 날이 마지막이야.”


휴대전화를 들어 날짜를 확인하는 사이, 노인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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