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회복

by 고밀도

그때 스쳤던 생각이 진짜였다니. 믿기 어려웠다. 자신이 한 혼잣말 때문에 대한민국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특히 뉴스에서 연신 폭행, 시위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불편했다. 평화주의자인 이지경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았다. 이지경은 맥주를 두어 캔을 먹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어쩌면 이런 혼돈의 세계를 무시하고 나머지 두 개를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에게도 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겪은 상황을 믿기 힘들 것이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태를 불러온 사람이 이지경이라는 것을 안다면 비난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혼자 끙끙대며 고민을 하느라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오랜 고민 끝에 이지경은 타인을 위해서 두 번째 드림캐처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 혼자만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드림캐처를 써도 마지막 하나가 남아있으니 그것은 더 신중하게 자신을 위해서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혼란을 가지고 왔다면 내가 바로 잡아야지.’


이지경은 테라스에 달아 놓은 드림캐처 앞으로 갔다. 드림캐처 뒤로 점점 차오르는 달이 보였다. 그달이 이지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드림캐처를 흔들었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


“반말만 존재하는 세상, 취소해줘.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줘.”


그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편해져서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알람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휴대전화로 봤다. 간만에 휴대전화에는 속보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문자] 존댓말 실종사건 상황 종료. 시민 여러분,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이지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기분 탓인지 사무실은 어제와 다르게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정곤대 부장과 나하나 대리의 표정은 밝았지만, 왠지 모르게 진정해 차장과 송사리 과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머! 지경씨, 왔구나. 그럼 이제 마음 편히 커피 다시 부탁해도 되겠어! 커피 드실 분~”


나하나 대리는 자기가 사 오는 것도 아닌데 온갖 생색을 내고 있었다. 정곤대 부장은 뒤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군대에서는 제대를 일찍 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상처가 더 회복되어도 한 달 정도는 부대로 복귀로 미루고 병원에서 요양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결 표정이 밝아졌고 더구나 오늘은 일상이 모두 복구된 것 같아서 마음이 가벼웠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다니 이지경은 지난 밤 두 번째 소원을 쓴 것을 후회할 지경이었다. 자의에 의한 반말은 아니었지만 동등하게 반말을 쓸 때는 왠지 서로 부탁을 하거나 일을 시키는 것도 조심스러워했었는데, 이제는 상하 관계가 다시 분명해져서인지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기 전에 커피 심부름을 받았다. 그것도 태어난 지 몇 개월 차이도 안 나는 나하나 대리한테!


“질서가 다시 잡히고 있어. 이제 편히 일할 수 있겠어! 그렇지 않아, 진 차장?”


“네…그렇겠네요.”


진정해 차장은 다시 장옥자가 자기 위에 군림할 것을 생각하니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회복이 반갑지 않았다. 불가항력으로 반말만 계속 나온다면 장옥자는 자신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올라서 스스로 진정해를 피하려고 했을 텐데 말이다. 진정해는 아랫사람이 반말하는 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별일도 아니었다. 윗사람처럼 군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회사는 자기가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이지경은 커피를 사러 터덜거리면서 나갔다. 커피 6잔을 주문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커피 6잔 나오셨습니다.”


이지경은 저렇게 커피는 존칭을 받는데 자신은 커피만도 못한 것인가 싶었다. 하루아침에 다시 이 모양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나 싶었다. 갑자기 서로 조심하고 고요했던 사무실이 그리웠다.


대한민국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세종대왕 앞에 있는 시위대도 사라졌다. 대한 유교 협회 사람들은 신나서 덩실덩실 북장구를 치면서 돌아갔다. 반대편에서 시위하던 젊은이들은 이제는 이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스스로 꼰대 문화를 청산하겠다고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며 흩어졌다.


대통령은 이제야 반지르르한 얼굴을 국민 앞에 드러냈다. 마치 이 엄청난 혼돈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자신인 것처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관계 부처의 노력이 빠르게 결실을 보았습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명실상부 동방예의지국의 역사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한글날은 앞두고 세종대왕께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주일간 각 분야에서 혼란이 생긴 부분들을 빠르게 복구되도록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대한민국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은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직 이지경만이 그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말인지 알고 있었다.


‘웃기고 있어. 다 내가 만들고 내가 해결한 거야! 그런데 이렇게 다시 나를 하대하면 안 되지 않겠니?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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