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이지경은 강심지의 대쪽 같은 지적에 자신 안에도 얼마나 권위 의식이 있었는지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심지 씨. 부장님보다 일찍 회의실에 들어가서 준비하자.”
“심지 씨. 잠깐! 이거 진 차장님이 싫어하는 컬러야. 보고서에서 이거 빼자.”
“심지 씨. 일찍 퇴근할 거면 미리 말해줘.”
그럴 때마다 강심지는 당황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지경의 의견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잘 빠져나갔다.
“네! 꼰대 에스티 선배님.”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누가 들을까 봐 이지경은 두리번거렸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지경은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지경] 야 내가 꼰대는 아니지 않냐?
[지선] 막내한테 꼰대 짓 했어?
[지경] 아니? 나는 막내가 회사생활 적응 잘하게 도와주려고 조언도 해준단 말이야.
[다정] 이지경! 그게 꼰대야. 그리고 시집살이 당한 사람이 더 시집살이시킨다고 하잖아. 너도 네가 당한 만큼 신입한테 하고 싶은 거지. 그게 조언인지 막내 역할 하라고 조언하는지 잘 생각해봐. 자신을 잘 돌아봐라.
친구들에게 ‘너는 꼰대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본전도 찾지 못했다. 이지경은 곧 보름달이 뜨는 날이 온다는 것도 잊은 채, 스스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보름달이 뜨기 하루 전날이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지경은 피곤하기도 했고 생각에 따져서 팔짱을 끼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 시간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 휴대전화기를 보면서 걷고 있었는데 누가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어깨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씨.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스스로 내뱉은 말에 이지경을 깜짝 놀랐다. 자신이 늘 경멸의 눈길로 쳐다보던 사람들의 거친 문장이었다. 어깨를 부딪친 사람 쪽으로 바라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드림캐처 노인이었다.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는 가던 길을 갔다. 이지경은 노인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곧 보름달이 될 것 같은 달이었다. 이지경은 그제야 보름달까지 남은 드림캐처의 소원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노인이 있는 쪽을 봤지만, 노인은 역시 사라지고 없었다.
‘겉모습만 노인이 분명해. 초능력자야 뭐야.”
이지경은 집으로 가서 차분하게 지난 2주간의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존댓말이 사라지자 서로에게 분노했던 대한민국의 권위주의를 곱씹어 봤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시위에 대해. 반말을 들을 때 당황하던 꼰대들의 표정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 입에 상처에 대해. 병장들의 폭행으로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해버린 20대 청년들에 대해. 그리고 존댓말이 돌아왔을 때 갑자기 변하던 그들의 태도를 기억했다. 하루아침에 돌아온 나하나 대리의 무례한 태도. 자신을 다를 줄 알았지만, 막내가 들어오자 어느새 꼰대처럼 구는 자기 자신까지 꼼꼼히 되살려서 곱씹어 보았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 있었다. 아무리 윗사람을 공경하고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목적으로 존댓말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이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연장이 있어도 의미 있게 사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용한다면 그 연장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이지경은 하나 남은 드림캐처를 사용해서 다시 존댓말을 사라지게 한다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신촌 길에서 만났던 그 노인이 다시 소원을 이뤄주는 드림캐처를 다시 팔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지만 차라리 이런 권위주의는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편이 나으리라. 폭력 사태는 사람들이 이 상황에 적응하면 잦아들 것이다. 불가항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강제로 모두 평등하게 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흔들지 않는 차에 넣어두었던 드림캐처를 가방에 넣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개인적으로 소원을 쓸까 하는 생각해봤지만, 이지경은 우연히 들어온 드림캐처인만큼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 소원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믿었다. 이지경은 어떨 때는 아주 쓸데없이 이타적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이지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림캐처가 지경의 손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이지경은 심호흡을 한번하고 테라스에 마지막 드림캐처를 걸었다. 그리고 곧 보름달이 되는 달을 한번 쳐다보고 드림캐처를 흔들었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다시 평등하게 존댓말을 사라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지경은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10년 후]
한 도슨트가 미래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상작품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여러분, 지금 보는 것은 과거에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던 구어체야. 10년 전에 갑자기 ‘안티 존댓말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쳐서 사라지고 말았어. 이제는 영상으로만 남아 있고, 영원히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의 구어체였어.”
아이들은 흥미롭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에는 한 손님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장면이었다.
“불고기 버거 하나 주세요.”
“네 고객님. 3천 원입니다. 아 바로 준비해드릴게요. 불고기 버거 나오셨습니다.”
아이들은 “불고기 버거가 나오셨습니다.”라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져서 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