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살만해진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다.

암의 속성

by 고밀도

얼마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막을 내렸다.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몇 번 보다가 원주 칼국수 집 할머니 편을 보게 됐다. 웃는 얼굴이 아름다운 할머니의 고운 마음씨에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다. 골목식당을 만나기 전까지 할머니의 인생은 너무 야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운 미소를 꿋꿋하게 지키는 할머니가 앞으로는 꽃길만 걷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얼마 뒤 할머니는 내 눈에 익숙한 모자를 쓰고 스크린에 등장했다. 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져버린 엄마가 자주 쓰던 모자였다. 나는 암 환자들의 모자를 잘 알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암이 찾아온 것이다.


“나쁜 것이 찾아왔어.”


그렇다. 나쁜 것이 찾아왔다. 암은 그렇게 고통 속에는 꼭꼭 숨어있다가 겨우 살 만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렇게 찾아온다. 심보가 아주 고약했다. 할머니를 그냥 두지 않고 안심과 행복을 비집고 들어온 암이 죽도록 미웠다.

엄마의 난소암도 엄마가 이제는 한숨을 돌리겠다고 말할 때쯤 불현듯 찾아왔다. 엄마는 30년을 넘게 일을 했다.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자기 최면이었을 것이다. 같은 해 엄마는 두 딸의 결혼을 마무리했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오랜 시간 조여오던 대출을 일부 정리했다. 이제는 큰 숙제 없이 건강을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안심을 누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해 9월, 동생과 내가 결혼한 그해 암이 문을 두드렸다. 오히려 힘들어서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살아가던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하필이면 왜 살만하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오는 것인가? 늘 밝았던 엄마는 암 수술비로 남은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감사의 의미를 아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창백한 얼굴의 엄마에게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암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한 놈이라는 걸, 그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암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살만한 인생따위는 없다고 알려주려고 온 것 같은 암이라는 존재. 엄마없이 맞이한 두번째 겨울에 나는 조금씩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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