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별하고 나는 불완전해졌다.

엄마라는 존재

by 고밀도

엄마가 사라지고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고통은 내가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그럼 엄마가 있을 때는 완전한 존재로 느꼈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엄마가 아프기는 했지만 다른 여느 딸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엄마가 있었으니까.


암 투병을 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바쁘게 살아가는 타입이었다. 암 투병이라는 것이 머리가 빠졌다는 것 외에는 외관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살이 급격히 빠지는 것은 말기 암 환자가 겪는 증상으로 빠져 버린 머리에 인모로 된 가발을 씌워주면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노상 병상에 있을 것만 같은 선입견도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 낸 것이다. 큰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내면, 수술로 제거되지 않는 암을 제거하기 위해 항암을 받는데, 보통 한 달 혹은 몇 주 단위로 3~4일 정도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는다. 그 외에는 퇴원하여 일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엄마는 끝까지 일을 놓지 않았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암에 끌려다닐 생각이 없다고 했다. 각자 일을 하는 모녀는 그 존재를 전화로 확인하는 일이 많고 실제로 만날 때는 서로의 바쁜 일정을 확인하고 만나야 했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지 못해도 전화를 걸어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면 조금 더 견디어 보란 말 대신, 조금 더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 대신 “네가 힘들지 않은 게 중요해. 엄마는 그것만 걱정돼.” “너무 애쓰지 마. 네가 행복해야지.”라고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다른 무엇보다 자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자신보다 자식의 처지를 생각하는 존재였다. 엄마가 사라진 뒤, 힘든 순간마다 이제는 나를 가장 생각해주는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불완전함을 느꼈던 것이리라. 이것저것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나의 안위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걱정해주는 존재의 부재. 불완전함의 이유였다.


이 불완전함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부단히 몸부림을 쳐봤다. 새로운 판타지 세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의 공백을 메우고, 각종 심리검사와 성격검사로 끝없이 나를 파헤쳤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려 3주간의 휴가도 내봤다. 그 많은 몸부림 끝에 알게 된 것은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제는 불완전함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만이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는 그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엄마 대신 스스로가 그런 존재가 되어 나를 아껴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마흔의 한 해는 다른 어느 때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그런 한해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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