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가 사라졌다. 그래서 나에게는 엄마를 그리워할 공간이 필요하다. 6살 아들의 동화책을 읽어주다 ‘포도’라는 단어가 마음에 턱 걸린다. 7년 동안 암 투병을 했던 엄마가 떠나기 전 얼마 간은 식사 대신 포도 몇 알 만을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샤인머스캣을 처음 먹어본 엄마는 무슨 포도가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했다. 나는 평생 그 맛있는 포도를 사줄 테니 꼭 오래 함께하자고 했지만 엄마를 덮친 암은 계속 맛볼 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 철 두꺼운 극세사 이불이 엄마의 품 같아서일까 이불을 푹 덮고 잠을 청하려 하면 더욱 그리움이 몰려온다. 휴대폰의 밝은 빛 때문에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단잠이 깰까 싶어 이불 속에 숨어들어 동생에게 카톡을 한다. 동생도 얼마 전 엄마를 상실했기에 그리움을 나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엄마의 자궁 안을 공유한 동생 앞에서 나의 슬픔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 서로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불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한참을 엄마의 그리움을 나누다 울다 진정하고 잠이 든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이불 속의 공간은 우리 자매에게 특별하다. 특히 우리의 어린 시절 이불 속은 따뜻함 그 이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었다. 엄마가 우리가 함께 쓰는 작은 방에 원목으로 된 2층 침대를 사주셨지만 2층은 우리의 미미가 생활하는 놀이 공간이었고, 우리는 1층에서 비좁게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 방학이 되면 부모님께서 모두 출근하시고 동생과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모님 없이 집에서 단 둘이 보내야 하는 2달의 방학. 우리 두 자매에게 의자 두 개와 이불 하나면 충분했다. 그것으로 동생과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먼저 의자 두 개를 마주 보게 하면 의자의 등받이는 양쪽의 높은 기둥이 된다. 거기에 이불을 씌운다. 이불 밑에 아늑한 공간이 마련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때로는 집이라고 정하고 베개를 가져와 소파로 만들고, 동생이 장을 보러 거실로 가서 알람 시계를 사다 나른다. 소꿉놀이가 싫증이 나면 그 공간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로 변신한다. 이불 밖에는 상어들이 지나다닌다. 우리는 이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서 무서워하는 척을 하고 서로 이불 밖으로 밀기도 하면서 놀았다. 그렇게 놀다가 잘못 밀치면 둘 중 하나가 마음이 상하여 냉전을 벌인다. 다시는 너랑 놀지 않겠다고! 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대안이 없어서 둘이 놀았지만 우리는 영 궁합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런 우리가 한마음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물론 이불 속에서 말이다. 두려움은 내부 결속을 강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종종 두려움을 피해 이불 속으로 피신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같은 마음,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이불 안에 있었다.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은 보통 한밤 중 시끄러운 소리로 시작된다. 방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잠이 깬다.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잠이 덜 깨어 맥락을 파악할 수 없는 다툼 소리들이 들린다. 그러나 부모님의 싸움 소리인 걸 감지하면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살아난다. 그럼 발로 걷어차서 종아리까지 내려간 이불을 빛의 속도로 잡아채서 정수리까지 덮는다. 그렇게 두려움을 피해 이불 안으로 도망간다. 그럼 어김없이 옆에서 자고 있던 동생도 깨어서 이불 안에서 두려움을 같이 나누고 있다. 그렇게 세상 의지가 될 수가 없다. 엄마 아빠의 싸움 소리는 마치 맹수들의 공격 같았다. 누군가 말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의 식탁 의자, 시계, 내가 아끼는 종이박스로 만든 인형 집이 거실에 있는데 부서질까 걱정이 되었다. 이불 밖으로 뛰쳐나가서 말리고 싶지만 두려움에 차마 용기 내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자는 척을 한다. 아직 어린 나를 의지하는 18개월 늦게 태어난 동생이 벌벌 떨며 나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나의 얼굴을 파묻을 겨드랑이는 없지만 얼굴을 덮을 수 있는 이불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불속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동생에게 ‘시스터 후드’라는 주제로 글을 쓸 것인데 제목은 ‘이불 속’이라고 말해주었다. (전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고 어린 시절의 해석도 다른 자매였기에 나의 주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단번에 우리의 즐거움과 두려움의 공간인 이불 속을 연상해냈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불 속 공간이 나에게 특별했는데 그것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의 놀이 공간이자 두려움을 진정시켜주던 이불 속은 이제 동생과 같이 그리움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이불 속이 외롭지 않게 해 준 동생이 새삼 고맙다. 어릴 때는 ‘나는 왜 외동딸이 아니냐고 동생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울면서 투정을 부렸지만, 엄마는 나에게 이불 속에서 감정을 나눌 친구를 선물해 준 것이었구나 깨달아 간다. 어릴 때는 내가 동생을 지켜준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견디어 낸 것이다. 우리는 같이 또 그리움의 시간을 같이 견디고 있는 중이다. 이불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