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겨울잠을 자는 중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자세
요즘 나는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동안 감정을 살피는 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무뎌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편안한 인상 덕에 사람들은 나를 보면 고민을 털어 놓기 시작 했다. 탕비실이나 화장실에서 눈을 마주쳐 인사를 하다가도 어느새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있었다. 공감형 인간인 나는 그 사람의 처지에 몰입하여 같이 걱정해주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동안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고,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얻기를 바랐다. 지금도 그 마음은 유효하지만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배려를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다 보니 어느새 내 감정을 돌보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Mute 모드를 작동시켰다. 코로나가 좋은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가려주니 용기가 났다. 마스크로 인해서 상대를 완벽하게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핑계 삼아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회의시간을 제외하고는 땅이나 휴대폰을 쳐다보고 다녔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눈을 마주 지지 않으니 인사하며 웃어주는 에너지도 아낄 수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내뱉던 대화도 확연히 줄었다. 그러다 회의를 많이 한 날은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버려서 집에 도착해서 바로 침대로 들어가 한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에너지를 쓰며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밖에서 아껴 둔 에너지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시기를 감정의 겨울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감정의 겨울잠을 자면서 지친 나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약 1년 동안 긴 겨울잠을 자면서 나조차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아껴둔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살피는 데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인생의 하반기가 곧 시작된다.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2번째 레이스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2번째 레이스는 누군보다 나의 감정을 살피며 내가 행복하고 편안한 곳에 서있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잘 알아야만 했고, 지금의 겨울잠은 큰 도움이 되었다.
곧 동면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나의 긴 겨울잠을 기다려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을 전한다. 해맑은 얼굴로(하지만 용기내어) 그들의 약속을 거절하고 나는 동굴 속에 숨어 있었다. 곧 봄이 오면 이 동면을 정리하고 조금 더 새로운 나로 살아가려 한다.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