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서 휴가를 냈다.

실컷 울고 싶은 날

by 고밀도

거실에서 창밖을 보면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 사이로 작은 산이 하나 보인다. 그 산의 선명함을 보고 그날의 미세 먼지를 가늠하는데 선명한 산의 실루엣을 보는 날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 바야흐로 찬란한 봄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날들이다. 이런 좋은 날이면 나는 실컷 목놓아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삶은 나에게 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역할을 해야 하므로 젖어 있는 눈은 곤란하다. 마스크로 눈까지는 가릴 수 없다는 것이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이동 중이나 화장실을 갈 때 혼자 있는 짬이 나면 울컥하다가도 이내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이성을 불러온다. 이렇게 참은 눈물이 목 끝까지 차 있었다.





작년 그날도 딱 이 날씨였다. 4월 30일, 잔인하게 날이 좋았던 날 엄마는 인생의 마지막 수술대로 올랐다. 난소에서 시작한 암세포들이 대장까지 세력을 넓히고 장폐색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시간의 수술이 진행되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수술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중간에 교수님이 나오셨다. 장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했지만 불가피하게 ‘장루’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암 환자의 가족이었지만 ‘장루’라는 시나리오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간으로는 전이는 되었지만, 소화를 담당하는 장기들은 오랫동안 무사했다. 엄마는 이미 수술하기 전에 담당 교수님께 ‘장루의 가능성’을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내색하지 않았다. 워낙 응급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선택권은 없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수술을 견디어 냈지만, 이번 수술은 유독 엄마의 회복이 더디었다. 5월에 시간이 나는 대로 엄마에게 향했다. 코로나로 면회가 쉽지는 않았지만 허락된 시간에는 엄마에게로 걸어갔다. 걷지 않고는,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집에서 엄마의 병원까지 걸어서 40분, 화창한 봄날,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 걷고 걸으면서 펑펑 울었다. 길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아도 괜찮았다. 나의 눈물을 보아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집에서 편히 울고 싶어도 정 많은 7살 아들래미는 나의 눈물 한 방울에도 반응했고, 엄마 앞에서는 씩씩하게 견디어야 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나는 홀로 걸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러 같은 계절이 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엄마가 이제는 내 옆에 없다는 것이다. 울고 싶어도 실컷 울 수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일상은 쫓기듯이 바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장 화창한 봄날 휴가를 냈다. 사유는 실컷 울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 끝까지 차오른 슬픔을 쏟아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눈물을 쏟고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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