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약손이 필요해

마흔의 어리광

by 고밀도

소화 기관이 약해서 어릴 때 자주 체기가 찾아왔다. 스킨십을 쑥스러워하던 나였지만, 그럴 때는 엄마 무릎에 누워, 배를 문질러주는 엄마의 손길을 느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체기가 녹아버리곤 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살갑게 챙기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아플 때나 내 감정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는 엄마였다. 아침에 내가 아무리 부은 눈을 내리깔고 있어도 내가 지난밤 울었는지, 잠을 설쳤는지를 단번에 알았고, 맹장이 터졌는지도 모르고 운동을 한다고 할 때에도 응급실로 나를 데려간 준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나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존재였다.


특히, 엄마는 워킹맘이 되고는 우리 둘 사이에 공감대가 더욱 형성되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챙기는 게 얼마나 고된 삶인지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물었다. “너도 나처럼 댕댕거리고(쫓기며) 살까 봐 걱정돼. 그러지 말어.” 그 말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럼 나는 괜찮아라는 말보다는 ‘그러니까, 엄마 너무 힘들어. 왜 이렇게 힘든 거야?’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린 시절 엄마도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각종 서류가 담긴 보험 가방을 문 앞에 내려 두고 출근 한 옷 그대로 저녁을 준비했다. 육수를 우리거나 양념장을 맛깔나게 할 시간은 없었지만 엄마의 된장찌개와 반찬은 허기를 채우고 온기를 채워 주었다. 사람들을 그것을 엄마의 손맛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마흔이 되어서일까? 엄마를 떠나보낸 고통을 덮기 위해 내 삶을 빡빡하게 만들어서일까? 올해 몸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다. 대상포진을 시작으로 온몸에 염증이 찾아왔다. 입안의 혓바늘, 배꼽의 염증, 콧속의 염증 등. 그래도 야무지게 약을 받아먹으며 염증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건강검진에서 간에 작은 결절이 보인다고 했고,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씩씩하게 추가 검사까지 마치고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대부분 이런 결절은 물혹이 대부분인데, 나의 혹은 모양이 물혹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서 6개월 뒤에 MRI 촬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질병을 판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많이 빗나가 있었다. 덤덤한 마음으로 차에 탔는데, 두려움이 급습했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을 알아차려줄 대상이 필요했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지만, 업무 중인지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간절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이런 순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엄마는 마치 그 증상이 자신에게 생긴 것처럼 걱정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걱정이 절실했다. 밀리는 차 안, 차와 사람으로 꽉 찬 도로에서 나 홀로 무인도에 있는 것처럼 외로웠다.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주는 존재가 없다는 것에 공허함이 느껴졌다.


건강뿐 아니라, 마흔의 나는 많이 흔들린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길들을 잘 살아온 것인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남은 생애를 보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하나뿐인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버티는 것’이 맞는 것인 것 말이다. 입사하고 1년쯤이었을 것이다. 11-12시까지 계속되는 야근,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만 같은 무리한 출장, 주말 출근이 이어지면서 나는 식탁에 마주 앉은 엄마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엄마, 이건 아닌 거 같아. 못 버틸 것 같아.’ 엄마는 그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라도 되는 것 같은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네가 제일 중요해. 돈이고 명예고 네가 제일 중요해. 엄마가 아직은 건재하니까, 그만둬도 괜찮아.’ 그 말과 마음은 마법처럼 나를 다시 일으켰고, 나는 14년째 그 직장에 몸을 담고 있다.


어릴 때는 나는 흔히 말하는 ‘손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숙제와 준비물도 스스로 준비했고, 애어른처럼 엄마와 아빠의 감정을 살폈다. 하지만, 마흔이 된 나는 인생에서 엄마 손이 가장 필요하다. 엄마가 옆에 있다면, 엄마의 마흔은 어땠는지를 묻고, 엄마에게 상처를 내보이며 엄마의 약손을 느끼고 싶다. 엄마 손이 가장 필요한 나이에 엄마가 곁에 없다. 나는 그렇게 마흔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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