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던 엄마
동생을 배웅하러 가는 길
엄마는 항상 인천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여행을 사랑했던 엄마는 공항에 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암투병을 하는 와중에도 엄마는 늘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내가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향할 때, 엄마는 같이 배웅을 나온 나의 남자 친구와 함께 버거킹 햄버거를 먹었다. 태국으로 한 달 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노란 색을 곁들인 레게 머리를 하고 나타났을 때는 엄마는 “네가 가끔 이렇게 튀게 하는 것도 좋더라. 너는 너무 FM이잖아.” 그리고 태국 쥐포를 같이 뜯어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입사를 하고 첫 출장지는 멕시코였다. 캐리어에 비즈니스 캐주얼을 잘 넣어둔 캐리어를 끌고 설레는 발걸음을 할 때도 엄마는 거기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의 양주와 엄마의 화장품을 건네면 그걸 들고 들어왔을 나를 더 걱정하던 엄마가 인천공항 1층에서 나를 기다렸다.
오늘 동생네 가족이 캐나다로 떠났다. 동생을 배웅하러 가는 길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목적이 아닌 누군가를 배웅하러 가는 길은 거의 처음인 듯싶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동생은 조금 더 따뜻하게 갈 수 있었을까?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동생을 배웅했다. 동생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아빠를 재촉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가요.”
흔들리는 나의 감정을 들켜 버릴까 봐, 공항 속에 숨어 있던 엄마의 기억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할 까 봐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동생도 떠나는 전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좀처럼 울지 않는 동생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 연락해.”
나를 수없이 배웅하고 마중했던 엄마처럼 내가 너의 배웅과 마중을 해주겠다는 말 대신 저 말을 전했다. 인천 공항에서 우리가 함께 느끼고 있을 엄마의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달콤한 젤리를 먹으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동생이 떠나버린 서운함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터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