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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Aug 05. 2022

오늘도 간다, 독서 모임

한 달에 독서모임 5회 하는 삶

어라,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지나가는 시간을 초조해하며 각을 잡고 자리에 앉는다. 이내 몸은 무너져 뒹굴거리지만 눈은 바쁘게 책을 좇는다. 마감에 쫓기는 사람처럼 책을 읽는다.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 한 움큼의 푸라기가 되어준 책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이다. 미래의 내가 언젠가 읽겠지, 희망 회로를 돌리며 책장에 고이 꽂아두고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책이었는데 어느 의 첫날, 내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돌을 다시금 굴려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고, 이 느낌 마치 시지프였기에 그 주의 독서모임 도서로 지정해서 읽기 시작했다. 3일이면 거뜬하겠지, 라는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읽어도 읽어도 머릿속을 겉도는 내용 때문에 3일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든 책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꾸역꾸역 읽어낸 책은 결국 몇 개의 문장들로 잔재하지만, 그 문장 중에 인생관을 바꾼 문장이 있다.


나의 자유는 한정된 운명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때 나는, 중요한 것은 가장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인간의 행동 양식과 가치의 척도는 그가 축적할 수 있었던 경험의 양과 다양성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삶의 부조리를 겪어 내고 난 뒤의 나는,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 대신 '많이 살아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삶에 대해 어떤 기대를 품지 않을 때 되려 모든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어치피 삶의 궁극적 의미 따위 없을 바엔 가능한 한 많이, 남김없이 받아들이면서 살고 싶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남김없이 소진해버리고 다. 결국 그게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중이다. 현재로서는.


이왕 한 번 사는 인생 '최대한 많이' 살자 싶은데, 이를 위해서는 자주 세계와 접촉하는 수밖에 없다. 독서는 간접적인 세계에 대한, 모임은 직접적인 세계에 대한 경험치를 늘려주니 가능한 선에서는 다다익선이 아닐런가.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한 달에 독서모임을 대략 5개쯤 하다 보면, 누군가는 사교계의 여왕이냐며 우스갯소리도 하고, 대체 무슨 욕구가 억압되어 있길래 그렇게 모임을 많이 하냐며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 등 '모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 달에 독서모임을 5개 하는 삶이란, 일하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책과 꽤나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서'를 해야만, 다시 말해 나의 시간을 '읽는 행위'에 갈아 넣어야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자칫 균형을 잃고 '사교'에 치중하는 순간 마감에 쫓기듯 밤을 새워 책을 읽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은 가능할지 몰라도 교양서적을 하루 이틀 안에 소화하기란 여간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책을 읽는 나에 대한 신뢰는 없는 터라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 속으로 나를 욱여넣는다. 장기계획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벼락치기에 자신이 있는 나는 1년에 100권 읽기 따위의 목표는 지키지 못하지만, 대신 눈앞에 잘게 쪼개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돌진하는 힘은 갖고 있다. 마감이 최고의 영감이라는 말이 있듯 일주일에 읽어야 하는 책을 하나씩 마감한다고 생각하며 모임 하나, 책 한 권을 세팅한다. 그렇게 짜여진 시스템이 주 1회, 한 달에 5번 독서모임 가는 삶이다.

 

물론 독서를 양으로 측정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읽어내는 내용의 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질만 따져가며 여유 부리기엔 내가 갖고 있는 자원의 밑천이 얕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은 너무나 많을뿐더러 시간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주 1-2권을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며, 그야말로 책과 얽힌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틈이 생기면 책을 꺼내 드는 삶을, 쉼의 시간에 활자를 옆에 두는 삶을, 그리고 책과 얽혀버린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그렇게 하루를 많이 살기 위해, 그렇게 또 하루를 기꺼이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간다,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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