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라는 허울 좋은 뒤통수

나를 울게 하는 추억과 상실에 대하여

by 정은희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삶만큼 인생에 뒤통수를 때리는 일이 또 있을까. 인생은 예습할 수 없기에 늘 복습뿐인 삶에서는 뒤통수를 맞기 일쑤다.


가장 속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상태가 영원하리라는 착각이다. 어리석게도 그러길 바라기 때문에 혹은 귀찮아서 애써 외면하는 진실들이 있다.


11월의 어느 날, 할머니가 장폐색으로 입원하셨다. 젊어서 받았던 암 수술로 장기가 수십 년간 조금씩 눌어붙은 탓이다. 연세도 있으셔서 어찌 손쓸 도리가 없어 요양원으로 모셔졌다.


할머니에게는 6남매의 자식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집에서 모시려는 이가 없었기에 할머니는 요양원에 모셔졌다. 외숙모가 요양원이 얼마나 청결한지, 얼마나 프로그램이 많은지, 얼마나 관리가 잘되는지 열변을 토한 탓에 5 자매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는 데 동의했다. 외삼촌더러 아들이라고 혼자 책임지라기엔 미안하고, 직접 모시자니 부담스러웠을 터라 얼마간 책임을 덜고 싶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결정이 못마땅했던 나는 조금씩 이모들과 엄마를 원망하며 할머니를 매주 찾았다. 요양원이 집 근처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날 반기는 모습도 좋았고, 할머니 혼자 심심하진 않으려나 신경이 쓰이기도 해서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보살펴졌던 기억이 모두 남아있진 않지만, 감정만은 남아있는 듯 할머니 곁에만 가면 나라는 존재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은 날 따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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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없는 유년 시절, 나는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친할머니의 반대로 부모님의 ‘결혼식’이 얼마간 미뤄진 탓이었다. 부모님께서 결혼식을 하고 나서도 얼마간 외할머니 가까이 살았기에 유독 내 어린 시절은 외할머니댁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생일에 케이크를 먹는 사진이라든지, (아직 결혼하기 전인) 외삼촌 목마 타고 개구지게 웃고 있는 사진이라든지, 외할머니 옆집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와 뽀뽀를 하고 있는 사진이라든지. 엄마의 입을 통해 구전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사진이라는 증거 탓에 나는 나에 대한 역사를 마음껏 조립했고,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에 대한 친밀감, 친할머니에 대한 약간의 증오심을 마음에 담고 성장했다.


논문 프로포절이 있던 4월 첫 주, 학교 일하랴 논문 서칭하며 프로포절 준비하랴 스트레스를 받던 터라 요양원에 가는 걸 한 주 건너뛰었다. 내 우선순위에는 할머니가 없던 탓이다. 바쁜 거 끝내고 다음 주에 가면 되겠지 생각하며, 할머니 상태가 영원할 거라 의지 없이 착각하며 내 할 일을 했다.


바쁜 일정을 한 단락 마무리 짓고 그다음 주에 가벼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았다. 문 열고 들어가 마주한 할머니는 주무시는 것 같았는데 무언가 태가 이상했다. 잠드신 건가? 호흡기는 왜 달고 있지?


"할머니 이제 너 못 알아본다" 할머니 곁에 있던 둘째 이모가 말씀하셨다.


"무슨 소리예요. 어디 안 좋아지셨어요?"


"할머니 의식 없어. 코마 상태란다."


뭔 소리야 이게. 코마 상태란 말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었어? 이게 내 현실이라고?


마음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게 속 안에 있는 것들이 바닥 없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이랬냐며 분노가 차올랐고 대상 없이 화를 내고 싶었다.


할머니는 깨어나지 못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더 이상 무언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망연자실함에 바닥에 주저앉아 할머니를 붙잡고 오열했다. 누가 우리 할머니 좀 되돌려 내달라고 기도하면서. 미리 알았더라면, 자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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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할머니가 의식은 없으셔도 청각은 열려 있으니 울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해 내가. 그냥 흐느끼는 수밖에 더 있나.


내가 하릴없이 흐느끼고만 있으니 할머니는 잡고 있던 내 손을 꽉 쥐어 주셨다. 듣고 있으니 말하라는 듯이.


"할머니 내 말 들려?"

꽉.

"할머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꽉ㅡ.

"할머니 내가 할머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꽈악ㅡ.


호흡기를 입에 달고 숨을 내쉬는 할머니는 육체 속에 갇힌 듯, 내 손을 꽉 쥐기만 할 뿐 더 이상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새끼 왔냐, 나는 우리 은희가 젤루 좋다.“ 해사하게 웃으며 반기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인데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나를 따뜻하게 데워준 한 세계가 잠들었다.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영원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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