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정직성에 대하여
광합성의 결과로 무엇이 생성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에서였다. 요오드 용액으로 불렸던 아이오딘-아이오딘화칼륨 용액을 감자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는가에 ‘청록색’이 된다고 쓴 답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눈앞의 잎을 찬찬히 들여다본 흔적은 없었다. 지식은 그들 안에 있었지만, 관찰은 그들의 시선에 없었다.
‘거무스름한 색’이라고 적은 친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청록색’이 아니니 틀렸다고 해야 할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1974년 한 졸업 연설에서 ‘카고 컬트 과학’을 언급한 바 있다. 이 말은 겉보기에는 과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학의 핵심 정신 — 정직함, 검증 가능성, 회의적인 태도 — 이 결여된 연구들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그는 과학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로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을 꼽는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리처드 파인만, Cargo Cult Science (1974 Caltech 졸업연설)
파인만은 연구자가 자신의 이론이나 가설이 틀릴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실험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보기엔 실험처럼 보이지만, 검증도 반복도 없이 원하는 결론만을 향해 달려가는 태도, 이미 마음이 정한 것을 과학이라는 외피로 감싸는 일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신념이거나, 기만이거나, 혹은 둘 다일 수 있다. 진짜 과학은, 결론을 향해 몰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진실이 무엇이든 그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 말은 단지 과학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학생들 역시 작고 어린 과학자로서, 그리고 과학을 ‘하는(doing)’ 존재로서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무엇을 정확히 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미 배운 지식에 기대어 눈앞의 현상을 억지로 해석하려 하기보다, 지금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과학적 태도가 오늘의 교실에는 더 필요하다.
‘관찰의 이론의존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 안에서만 사물을 본다. 그래서 아는 만큼만 보고, 아는 대로만 본다. 하지만 아이들이 과학을 배운다는 건, 세상을 일정한 이론의 틀로 재단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묻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적어도 이번 수업에서는, 선행학습으로 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아이보다 제 눈으로 본 것을 거짓 없이 말하려 애쓰는 아이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대답은 어딘가 부족할 수 있고, 용어는 서툴 수 있지만 그 말은 정직한 탐구의 흔적이고, 과학을 향해 걷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적 삶을 밀어 올리는 질문을 시작하게 만드는 순간일지 모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