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지 않은 투표, 그러나 정직한 마음

타인을 인정하는 일에 대하여

by 정은희

오늘 국어 수업에서는 『그레이엄 할아버지께』를 읽고, 이야기 속 인물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어보았다. 각자 만든 상장을 모둠별로 공유하고, 모둠에서 하나씩 대표작을 뽑았다. 그리고 그 상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상’을 뽑는 투표를 진행했다.

glen-carrie-8lNHkM9URlw-unsplash.jpg

아이들에겐 투표권을 두 개씩 주었고, 같은 작품에 두 표를 몰아줄 수 없다는 단서도 달았다. 그 자체로는 교육적이고 재미있는, 자율성과 판단을 겸비한 활동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건 조금은 씁쓸한 장면들이었다.


아이들은 정직하게 감동받은 상에 투표하기보다 '친구 작품이 뽑힐까 봐', '다른 모둠이 칭찬받는 게 싫어서', '굳이 내가 투표하지 않아도 많이 받을 것 같아서', '표가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전략적인 투표를 했다. 어떤 아이는 일부러 표가 제일 적을 것 같은 작품에 표를 주기도 했다.


그건 그 아이 나름의 정의였겠지만, 나로선 마음이 잠깐 서늘해졌다. 표면적인 수치는 공정한 듯 보였지만, 아이들이 드러낸 마음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았다. 공정해 보이는 숫자 뒤로, '내 표가 만들어 낼 서열'을 계산하는 작은 속삭임이 어른거렸다.


교실에서는 수많은 날 것의 감정들이 드러난다. 어른이 되며 조금씩 감추게 되는, 그러나 감추었다고 사라지지 않고 내면 어딘가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그런 감정들이.

아이들은 대개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서툴기에 오늘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누군가를 인정하면 내가 작아질 것 같고, 남을 칭찬하면 내가 밀려날 것 같은 그 마음을.


어쩌면 그건 어른들의 세상과도 다르지 않다. 어른인 나도 매번 이 감정을 능숙하게 다루진 못한다. 더 잘한 사람을 칭찬하기보다 내 안의 질투와 경쟁심에 밀려 나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으니 아이들이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내 자리를 빼앗는 행위가 아니라시선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경험을 아이들에게 축적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교사로서 내가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책임감 있게 건네는 방식이었다.


가만히 바라보다 투표를 한 아이들에게 그 작품에 표를 준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네가 보여준 ~덕분에 내가 이렇게 달라졌어'처럼 그 작품이 나에게 준 영향을 말해보도록 했다. 나를 존중하는 만큼 다른 친구도 인정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


교육은 아마도 아이들이 보이는 이런 감정의 움직임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 표를 그곳에 주었는지, 무엇이 마음을 가로막았는지를 말할 수 있게 돕는 일. 그 마음을 잘못됐다고 말하기보다 그 감정 속에 감춰진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발견하는 일.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작은 용기를 건네는 일. 그렇기에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이 작은 교실 안의 감정들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들이 머무를 수 있는 언어와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도 다시 한번 아이들이 일깨워 주었다. 비록 점심 먹으러 가는 시간이 늦어진 점은 조금 안타까웠지만.

nik-MrqlyH6J8Yw-unsplash.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