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희 Aug 22. 2020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단상

문득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다.

‘교사’, 특히 '초등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생활태도를 가르치는 직업이다.




먼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지식정보화시대에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것이며,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해 자문해본다. 모르는 지식을 핸드폰 켜고 ‘검색’하기만 하면 온갖 정보들이 파도처럼 펼쳐지는 이 시대에,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여기에서 의문점이 든다.


그럼 교사는 왜 존재하는가?



⠀구성주의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지식은 학습자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구성되며,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학습자 개인이 스스로 어떤 실재에 대해 주관적인 의미와 이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인지 구조를 변형하거나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식을 학습하는 상황은 있되, 교사는 그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일 수 없고, 결국 지식을 함께 구성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다음으로 ‘생활태도’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특성상 보호기능으로서의 역할이 비대해지고 있는 추세에서 이 점은 존재적 의미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규칙을 학습하고, 가치관을 확립하는 시기인 초등학교 시기에 사회적 자유의 의미를 생활 속에서 가르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길러내는 것이 사회가 올바른 기능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교사는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생활태도’의 본을 보이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재고해 보았다.


이를 위해 먼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점검해 본다. 아이를 불완전한 존재로 볼것인가, 완전한 존재로 볼 것인가.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는 미국교육과 한국교육의 차이를 설명하며, 미국 교육이 ‘네 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궁금해 하는 데 반해 한국교육은 ‘네 안에 무엇을 넣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기술한다. 즉, 한국식 교육은 내 안에 있는 걸 존중해 주는 교육이 아니라 늘 없는 것에 대해 지적받고 그것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받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적용해 본다면, 아이는 갖고 있는 고유 지능이 다른, 이미 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중심점을 자신의 바깥에 놓고 눈치를 보며, 바깥을 살피면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점을 안에 찍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성장할 수있도록 교육하는 교사가 되어야 겠.



다음으로, 아이들이 교사를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규 때에는 교사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옥죄는 삶을 살았다면 이젠 시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학교생활 12년 동안 서로 다른 12명의 교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각기 다른 장점이 있고 또한 각기 다른 단점이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생각해 본다면, 교사는 ‘나‘라는 렌즈를 통해 아이들이 어떤 세상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교사가 어떤 경험으로 어떤 교육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한 뼘 더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교사옳은 가치와 삶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그렇게 하나의 ‘창’을 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의 파도 속에서 춤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