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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Aug 23. 2020

'왜' 해야 합니까?

개학을 앞두고 떠오른 에피소드 하나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된 학급경영 한 번 못하고 있어 난세인 형국이지만, 개학을 앞두고 떠오른 에피소드 하나를 써내려가보고자 한다.


학교에서는 방학이 되면 방학숙제가 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원숙제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학교 차원에서 배려(?)해야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최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독후감 몇 편, 일기 몇 편 등이 제시된다.

멋모르는 신규 때는 익숙했던 방식 그대로, 혹은 학교에서 내려오는 관례대로, 되도록이면 튀지 않게, 옆 반이 하는 대로 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만의 교육철학이 생기고 내가 이 아이들을 왜 만나고 있는지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이들에게 나가는 과제 하나도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귀중한 방학 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그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좋을지 그려나가면서 과제를 냈다. 예를 들면 문화생활 인증샷 보내기라든지, 차이나는 클라스와 연계한 글쓰기라든지.




늘 방학 숙제는 개학 전날 몰아서 하는 습성을 가진 아이들은 방학 내내 안부인사 한 번 없다가 개학 전날이 되면 부쩍 안부인사를 건네며,

'문화생활은 했지만 인증샷을 못찍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긴 갔는데 그날따라 핸드폰 충전을 안해서 배터리가 부족했는데 어떡하나요?',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실수로 삭제해 버렸어요', '방송 보려고 동영상만 클릭하면 핸드폰이 꺼져요' 등의, '선생님, 저 숙제 안했어요'를 창의적으로 패러프레이징한 답변들을 쏟아낸다. 수업시간에 브레인스토밍하라 하면 생각하기 싫다는 이유로 '없다'를 써내려가는 아이들인데 개학 전날의 텐션은 세상 그렇게 창의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할까 고민하던 글이 있었다. 벌을 주어야 할지, 야단을 쳐야 할지, 책임을 물어야 할지. 그러다 그것보단 내가 이 아이들에게 어떤 능력을 길러주고 싶은지를 생각했고, 숙제를 안했다는 스트레스와 부담감 속에서 학교를 나오는 게 어딘가 싶어 세상사 걱정했던 일들도 겪어보면 별 일 아니라는 거,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라도 길러줘야 겠다 싶기에 과제 제출날짜를 미뤄야겠다는 식으로 글을 마쳤던 것 같다.




그러다 스타트업에 종사하시는 분의 댓글 하나가 참 크게 와닿았는데, 직원에게 업무를 부여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고, 대부분 어른도 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시며 그 분도 처음에는 일 안하는 직원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관점을 바꿔 그 직원이 '왜' 일을 안하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고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해 보았다고 하셨다.


1. 과제를 왜 해야 하는지 몰라서(목표 달성으로 베네핏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재미가 없어서, 동기부여 결여 등)

2. 성공여부를 파악하기가 불명확해서






이 댓글을 보다가 순간 참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분명 나도 '왜'라는 고민을 참 많이 한다고 자부했고, 나름의 답을 찾아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던 connecting the dots를 학생들 개개인에 적용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머릿속에 그 그림을 '나 혼자' 그려나가며 뿌듯해 하고 있는거 아닌가라는 자각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명징한 설명 없이 내 머릿속만 바쁘면 아무리 훌륭한 교육활동이라한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개중에 똑똑한 아이들은 1년 간의 학급 운영이 마무리되는 학기 말에 감사인사를 표하며 '선생님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한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해주고, '선생님이 찍어주신 마음의 점들을 이어 '별'을 품고 살겠다'는 말도 해주고, '선생님이 제 마음 속의 별입니다'라고 이야기도 해주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수행했던 과제들의 의미는 커녕 대체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 그저 힘들기만 했던 활동들로 기억하지는 않을런지 문득 두려워졌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모든 활동마다 '왜' 해야 되는지를 설명하느라 잔소리가 길어진 게 함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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