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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Feb 04. 2021

받고 싶은 상이 무엇이니?

졸업장에 숟가락 얹기


졸업을 앞두고 졸업장과 더불어 받고 싶은 상장을 스스로 정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의 여신상', '내 수학교재는 비상', '난 너희들의 우상', '내 얼굴은 웃상', '건강하게 먹어라 밥상' 등 통통 튀는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이런 상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직 학교에는 체계라는 것이 있고, 결재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므로 검열(?) 작업을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시 앉혀 놓고, 기존에 '있었던' 상 중에 원하는 상을 '고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성실상', '모범상', '예절상' 등.



유난히 반항적인 성향을 보이는 한 학생이 있었다.  말발굽 같은 슬리퍼를 신은 내 키를 훌쩍 뛰어넘고, 말투도 상당히 거칠었기에 앞에서는 내색 안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반항하면 어쩌나 움찔거리게 되는 학생이었다. 늘 등교 수업에 지각을 하고, 9시 넘어서 헐레벌떡 교실 문을 벌컥 여는 학생이었고, 보통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거나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어서 "라떼는 말이야~" 일장연설을 하게 만드는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고른 상이 '모범상'이었다.


코로나여서 자주 못 본다는 핑계로, 그리고 얼마 간은 나의 편견으로 그 아이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그 아이는 누구보다 '모범'적인 학생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그러한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교사였던 것이다. 아,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조금만 더 들여다볼 걸.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 나에 대한 솔직한 평을 들어보고 싶어서 익명으로 설문을 돌렸다. 선생님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보라는 질문에 '츤데레 같은 선생님', '착하고 잘생긴(?) 선생님',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 '내 인생의 디딤돌', '피카츄 선생님' 등등 역시나 아이들은 창의적인 답변들을 쏟아냈는데, 그 수많은 답변들 속에 '무섭지만 재밌는 선생님'이라는 답변을 보며 그 아이를 떠올렸다. 아마 그렇게 표현한 누군가가 그 아이일 거라 생각한다. 그 아이에게 늘 나는 '무서운 줄 알았는데'의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 '무서운' 선생님이었을 테니까.


그 아이의 욕구를 미리 알았더라면 칭찬의 말 한마디, 인정의 말 한마디 더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꼭 가정법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 지나고 나야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리고 바란다. 꼭 그 아이를 '모범적인 학생'으로 인식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길. 그래서 날개를 펴고 마음껏 날아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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