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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Sep 16. 2021

회장 선거('보통'의 아이들에 대하여)

<보통의 존재>, 이석원

회장 선거를 치렀다. 발랄한 4학년답게 후보자가 남녀 각각 7명이나 되었다. 학급 인원수가 25명인데 14명이나 후보자로 나온 것이다.

(본인이 본인을 추천하고, 또다시 다른 친구를 추천하는 순수함이란..^^ 그럼 넌 누구를 뽑을 건데...^^) 우리 학교에서는 후보자 6명이 넘어가면 후보자 예비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권자를 거르고 다행히(?) 아름답게 후보자가 6명으로 추려져서 예비 투표 없이 임원선거를 진행하였다.



아이들이 준비해온 공약 발표를 들으며 평소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친구, 재미있는 말로 친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친구들이 당연지사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여학생이 비장하게 걸어 나왔다. 1학기 회장 선거에서 2표를 받고 침착한 성품이 흔들리던 게 기억나는 친구였는데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준비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장난스럽게 공약을 발표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진지함이 단연 돋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긴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숨죽여 공약 발표를 듣던 아이들은 그 여학생이 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결과는 압도적 차이로 회장 당선.



평소 말수가 적고 진지한 학생이었다. 모범적이지만 눈에 띄지는 않는 친구였고, 매사 최선을 다하지만 교실에서는 특출 나거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주로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친구였다.

아, '교실에서는'이라기보다는 '나'라는 교사의 시각에서가 맞는 표현이겠다.


그랬던 친구가 다른 아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되니 '애써줘서 고맙다'라는 마음이 울컥 들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앞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부수는 모습에서 교사로서 그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이 시간을 위해 준비했을 그 아이의 노력이 감동적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교실이라는 이 작은 사회에서조차 튀지 않으면 주목을 받기 어렵고, 뒤처지지 않으면 관심을 받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발한 생각이 내 교육관을 흔들었다. 돌아보니 교육청 '영재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기초학력 부진 '키다리샘'으로 활동하면서 정작 그 양극단 사이에 나의 관심을 가장 필요로 하는 '보통'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가, 반성해 보게 된 것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비약을 이룰, 비고츠키의 '스캐폴딩'이 필요한 다수의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알을 깨고 나갈 기회를 제공받겠지만 그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을 발견할 기회조차 만나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 방황하게 되는 게 아닐까. 물론 스스로는 답을 찾아내겠지만 그 시간을 앞당겨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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