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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Sep 26. 2021

마음에 걸린 무게추 하나

진심을 선물 받는다는 귀한 경험

방학 중 업무폰 전화벨이 울린다. 무슨 일일까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는다. 다름 아닌 전학 문의에 대한 전화.


나를 보며 빙긋빙긋 웃는 학생이었다. 별다른 말을 잘하진 않는 학생인데 희한하리만큼 나를 보면 웃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말로 담아내기 어려워하는 학생이어서 늘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선물로 표현하는 학생이었다. 가령 나를 그린 그림이라든지, 25명이나 되는 반 친구들에게 팔찌를 만들어 선물한다든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듯 말로 가볍게 환심을 사는 이들도 많은데 마음속에 깊은 우물이 있어 물을 길어 올리는 데 꽤나 힘을 들여야 하는구나 했던 아이였다.




방학 중에 이사를 갔지만 집을 계약하는 문제 때문에 개학 후 며칠 체험학습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체험학습 신청서를 건네주려 아버님이 학교에 방문하게 되었다.


오후 세시 반, 약속한 시간에 아버님이 오셨다. 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를 들고.


일하는 중간에 오신 것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순 없었기에 필요한 말만 하고 인사를 하려는데 그동안 우리 하은이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3초 정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당황한 마음에 같이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불에 덴 듯 조여들며 화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떠나면서 마음을 전해주는 일이 실로 오랜만이기도 했고,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을 존중해 주는 모습에서 보여준, 교사를 교사로 인정해주는 그 마음의 무게 때문이었다.



하교시간 늦어지면 학원 시간 늦는데 늦게 끝낸다고 민원전화를 넣고, 학원 숙제해야 되는데 학교 숙제가 너무 많다며 민원전화를 넣는 현실에서 한 학기 자신의 아이를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있자니 한없이 가벼워지려 했던 내 태도에 다시금 무게추 하나가 걸렸다.


진심을 선물 받는다는 것, 사람을 무겁게 만들어주는, 좀 더 책임감을 더해주는 귀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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