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이 엄마]
“엄마, 나 괜찮아. 그만 미안해해. 동생 잘 키워 줘.”
원피스를 입은 어여쁜 꼬마 숙녀가 말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은 나를 향해 서 있었고 예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난 곧장 팔을 뻗어 그 아이를 안아보려 했지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고, 그 말을 남긴 채 점점 멀어져 갔다.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깬 그날, 나에게 또 한 번, 기적 같은 선물이 찾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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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자책으로 반년을 보내서였을까?
나는 태아에게 함박 웃고 살라는 의미로 '함박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나도, 너도, 활짝 웃으며 살아가자고.
그리고 이번엔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마음속 깊이 바라고 또 바랐다. 건강하게 만나자고.
임신 초기 새벽에 나 홀로 깨어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바나나를 먹고 잠든 적도 있었고, 후각이 민감해져 냉장고와 거리 두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먹고 싶은 과일이나 음식이 떠오를 땐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함박이가 먹고 싶대.'라며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며 몸무게 생각은 뒤로한 채 행복을 살찌워갔다.
나날이 불러오는 배 안에서 느껴지는 함박이의 움직임을 어루만지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공유했고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지냈다. 그러다 예정일을 나흘 앞둔 어느 새벽, 뱃속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진통인가 생각했는데 점점 더 세지는 강도에 때가 되었노라 알 수 있었다.
습- 습- 후- 후-
진짜 진통은 진짜 아프니 뭐 바로 안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으으으으
한 네 시간쯤 참았을까. 진통 간격이 불규칙하기도 하고 초산모는 병원에 가더라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집에 다시 돌려보낸다는 얘기를 들었어서 참고 참다가 안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병원에 도착 후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고 긴 기다림 끝에 건강한 남자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나는 공식적인 엄마가 되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석자로만 살던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병원과 조리원에서 함박이 어머님이라고 불릴 때 처음엔 정말 어색했다. 아니 얼떨떨하단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라니!!!'
열 달 동안 품었고, 아기가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도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저 작은 몸에 맞는 옷이 어디 있고 또 어떻게 갈아입힌단 말인가.
출산 전에 이런저런 강의를 찾아보고 출산교실도 다니면서 나름 분만과 육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실전은 생각보다 더 생생한 실제였으며 기저귀 한 번 갈아본 적 없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 정말 많았다.
아기가 졸림, 배고픔, 기저귀 불편함 등을 표현하는 울음소리가 다 다르다고 배웠는데, 아니 어디선가 분명 들어봤는데 내 귀엔 왜 다 똑같이 들리던지…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서툴렀던 초보 함박이 엄마.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또 다름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다. 엄마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며...
육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