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먼츠필름 Oct 26. 2018

[인터뷰] 세상을 바라보는 눈

배우 양조아

 

몇몇 작품이 굉장히 인상적인 배우가 있었어요. 밝고 어떤 때는 매우 어두워요. 그 사람이 궁금했어요. 어둡고 깊은 감정 아래에 꿈틀대는 힘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 목소리와 그 떨림, 그런 감동은 쉽게 주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비칠 조(照) 맑을 아(雅) 맑게 세상을 비추는 양조아입니다.


아 이름이 한글이 아니군요.      

비칠 조, 맑을 아. 저는 제 이름 정말 좋아해요. 이 뜻이 너무 좋고요, 힘들 때 이 뜻으로 힘을 많이 받아요. 세상을 밝게 비춰야지 하는 생각 해요.


이름이 꼭 독특하면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그럼 그 이름은 쭉 마음에 드셨겠네요.      

아니에요^^; 놀림은 많이 받았어요. 어렸을 때 ‘해태 조아’라는 음료 이름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상처가 됐는지 울기도 많이 울고 했어요.


배우로서는 겹치거나 하지 않고 기억되기 너무 좋은 이름일 것 같아요. 

제가 따로 인터뷰를 좀 찾아봤었는데 처음은 실용음악과를 전공하셨더라고요. 배우 시작점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입시를 할 때 즈음해서는 뭘 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실용음악과를 갔어요. 공부는 하기 싫었고 왜 해야 하는지,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난 그냥 재밌게 살다가 죽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더 많았죠. 

노래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합주하고 코러스 하고 재밌게 지내면서 가수가 되는 건 용기가 없으니 보컬 트레이너가 되어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두려워요. 심지어 인터뷰가 책으로 나오다니 이젠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게 진실인걸요.^^;;

학교에서 재밌게 지내다가 어떤 공연을 보게 됐어요. 공연을 보는데 울화가 났어요. 그 화가 ‘왜 이렇게 못해?’ 그런 화가 아니고 굉장히 서럽고 억울하다는 느낌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나도 저거 하고 싶은데,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왜 못 하고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청 많이 울었어요. 사실은 제가 배우를 하고 싶었다는 걸 제 안으로 굉장히 숨기고 속이고 있었던 거예요. 까만 피부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었고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었고 하다 보니, 배우들을 다들 얼굴이 예쁜 사람들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감히 어떻게 배우를 하지라는 생각이 내면에 있었던 거죠. 그날 침통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연기과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굉장히 당연스럽게 ‘나는 네가 처음부터 그런 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배우나, 이런 예술계통의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생계나 다른 부분들을 생각하면 반대하실 만도 한데, 부모님께서는 거부감이 있거나 하지 않으셨나 봐요.     

저희 집이 굉장히 보수적인데 한편으로는 신기한 집이에요.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면 안 되는데, 클럽 가는 건 괜찮았어요. 저희 부모님께서 워낙 춤추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80년대는 ‘스탠드 바’라는 곳이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종종 데리고 가셨어요. 가끔 가면 다 같이 춤추고 놀았어요. 아버지께서 노래 듣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어머니께서 노래를 잘 부르세요. 어렸을 때부터 가무와 굉장히 밀착돼서 자라왔어요.


결정적 순간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된 거군요. 

독립·상업을 쉽게 나눌 수는 없지만 공연을 쭉 하시다가 영화를 하시는 경우, 영화하는 기간 연극하시는 기간이 따로 있으신 분들도 있고, 배우님 같은 경우 제가 느끼기로는 연극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는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장르를 나눌 생각은 없어요. 어떤 분야가 저에게 더 특별히 매력적이다 라고 느끼지도 않아요. 단지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어요.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어떤 장르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졸업할 때 즈음 ‘양손프로젝트’라는 팀에서  같이 공연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고, 그 팀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지금도 그 팀하고 너무 잘 맞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요. 그 사람들 덕분에 연극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처음 참여하게 된 건, 제가 하는 연극을 보고 이돈구(<가시꽃> 연출) 감독님께서 함께 해보자 하셔서 처음 카메라 뭔지도 모르는데 ‘연기하는거 좋아!’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래서 어떤 장르에 의도적으로 비중을 두는 건 아니지만 순간순간 가장 ‘땡기는’ 선택을 하거나 당장 덜 땡기더라도 멀리 봤을 때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을 해요.


양손프로젝트는 어떤 곳인가요?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공동창작 집단이에요. 연출 1명, 배우 3명인데 작품 선택부터 모두가 같이 해요. 작품을 하는 방법을 예를 들면 다 같이 도서관에 가서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보자고 생각하고, 각자 원하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거예요. 이 소설이 왜 좋은지, 왜 연극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서로 설득을 하는 과정을 거쳐요. 서로를 설득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소설을 더 폭넓게 이해해요. 지금까지 단편소설을 무대화하는 것을 많이 했었어요.

 

양손프로젝트 :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 집단. 손상규 배우, 양종욱 배우, 양조아 배우, 박지혜 연출

    

요즘 여기저기서 캐스팅이 많이 되고 바쁘신 시간을 보내실 것 같은데 여러 작품 중에 물리적으로 시간이나 여력이 안 될 때도 있잖아요. 병행하기 어렵다 싶을 때는 어떤 걸 우선순위에 두시나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품이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딱히 없더라고요. 전 워낙 한 작품하고 조금 쉬고 또 한 작품하고, 이런 식으로 다작을 하기보다는 한 작품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까 요즘 독립영화 몇 작품, 드라마 몇 작품 들어온게 굉장히 힘든 스케줄로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병행하기 어렵다 싶을 정도의 스케줄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몇 작품이 겹쳐서 들어올 때가 간혹 있긴 하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냥 더 재밌을 것 같은 걸 선택해요. 그래서 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좀 순간순간을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연극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 보니 호기심이 많아요. 캐릭터를 연구할 때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시나요?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연극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평소에 관찰이나 연구를 해서 데이터를 쌓아 놓아요. 유심히 쌓아둔 것 중에 뚜껑을 열어보는 방식인 것 같아요. 하지만 배역을 만났을 때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관찰한다거나 하기도 하고 캐릭터를 내 것으로 입히는 과정은 매번 다른 것 같아요.

외형을 컨트롤해서 신체를 미세하고 디테일하게 변화를 줘서 찾아요. 내 신체를 바꿔냈을 때 불러일으켜지는 감각을 발견해서 반복연습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요.

예를 들면 <씨유투머로우>(변승민 연출, 2015)에서 ‘네. 늦었어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입을 어떻게 오므리는 지와 그와 맞춰서 몸을 어떻게 쓰는지 반복해서 해보면, 일상에서 어떤 순간에 이런 몸을 사용하게 되는지 생각해보고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식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신다고 하면, 현장에서 애드리브라던가 여러 가지를 보여드리는 편이신가요?     

그럴 때 도 있고 저는 애드리브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시나리오 안에서 풍부하게 하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편인 것 같아요.


배우한테 롤 모델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연기 때문에 감흥을 받거나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태도를 본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저희 팀(양손프로젝트) 사람들을 좋아해요. 연기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적던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만든 사람, 연기해낸 사람, 작가들의 삶이 궁금해요. 예술 작품 자체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 자체가 잘 살아보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인생을 잘살아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는 거예요. 저에게 자극을 주는 배우나 연출이나 주변 사람일 수 박에 없는 건 제가 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연출에 도전하고 있는 배우들이 늘고 있는데 연출이나 다른 분야에는 관심 없으신가요?      

저는 연출 쪽으로는 아직 관심은 없어요. 연기에 가장 집중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 그리고 이 환경에서 인간 양조아로써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에 더 집중해요. 사실 저는 연기보다 저 자신 그리고 제 타인이 더 중요해요. 어찌 됐던 모든 건 사람이니까요.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은 어떠신가요? 사실 배우들에게 그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시간이 다시 연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되지는 않나요?

제가 운 좋은 케이스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공연을 거의 계속해서 연기를 안 한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어요. 항상 뭘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에 항상 목마른 경우는 아니에요. 만약 영화만 했다면 정말 쉬는 시간이 많았겠죠. 저는 연극을 할 때도 항상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극을 할 때도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갖고, 그 쉬는 시간을 정말 스트레스 안 받고 잘 놀아요. 쉬는 시간 동안 불안해하지도 않아요. 제가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만화방을 엄청 많이 가요^^


유독 사투리를 구사하는 역할을 하신 작품이 있는데, 탈북자 역이 있어서 연변 사투리와 <이 별에 필요한> 도 강원도 사투리를 쓰셨잖아요. 사투리 구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강원도 사투리는 너무 창피한데 허지언 배우의 아버지께서 녹음해 주신 거예요. <은아>라는 영화할 때는 실제 탈북자 선생님이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예전에 해무라는 공연에서 연변 사투리를 배웠는데 한번 배우고 나면 요긴하죠.


전반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역할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다양성의 면에서 보면 좀 한정되어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 데 어떠신가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 같은 거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간극 같은걸 많이 느끼게 되잖아요.  제가 일상에서의 제 모습과 사회 활동이 라는걸 하는 제 모습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작년이나 제작 년까지는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미팅을 할 때 그런 이미지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을’의 역할에 서 본 적도 있고 그런 감각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많이 변했어요. 계속 변하고 있는 중이고요.

    

조금 더 폭넓은 캐릭터를 하게 된다면 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있을까요?     

독립영화에서는 주로 억압되어 있고 어두운 인물을 많이 연기했지만, 일상에서의 전 굉장히 장난기가 많고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해요. 저의 유머러스한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배우 분들 보면 그 배우의 제일 좋았던 작품 뽑으면 주로 멜로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요즘에 제일 없는 게 멜로잖아요. 드라마는 많지만, 정통 멜로 연기를 기대하게 돼요.

기억에 남는 영화 현장은 언제 인가요?

저는 참 지나간 일을 기억을 심하게 못 하는 거예요. 그게 참 두려워요. 인터뷰를 할 때 더 그렇게 돼요. 대답을 충분히 잘못할 수도 있어요. 기억에 남는 건 <은아>(정승현 연출, 2016)와 <푸르른 날에>(한은지 연출, 2017)인 것 같아요.

<푸르른 날에>는 ‘동일방직 똥물사건’을 실제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서 의미도 있지만 만드는  과정도 굉장히 좋았어요. 그때 사건을 찍은 사진작가분인 이기복 선생님을 만났고, 실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 사건의 당사자이자, 운동을 하셨던 이총각선생님을 만났어요. 70년대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게 굉장히 감명받았어요. 당신과 같이 생각하시는 분들 덕분에 내가 각성하고 깨어날 수 있었고, 제가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감사하고 존경심이 들면서 눈물이 났어요.

영화 작업환경에서 여자들이 많은 현장이 별로 없었는데, <푸르른 날에> 팀은 여자들이 많았어요. 그것만으로 도 굉장히 신선한 환경이었어요. 제 안에 있는 벗어던지고 싶지만 오랜 시간 고착되어 벗겨지지 않은 여성에 대한 편견들이 많이 깨졌던 시간이 었어요.

한은지 감독이 정말 예민하게 화낼 수 있는 순간이 있었어요. 자연이 도와주지 않고 그런 날도 있잖아요. 그런 날도 감독님께서 유하게 넘어가는 걸 보면서 굉장히 감탄했어요. 물론 속상했겠지만 대하는 방식이 마찰이 별로 없고 다들 즐겁게 임했던 것 같아요.


삶은 짧아요. 우리가 사는 모든 날 동안 그 시간을 메우며 살 수는 없어요. 세상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당신 그리고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과 아름다움을 나누며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 양조아


장소 협조_03 스튜디오

인터뷰어_필름다빈 다빈

사진_조상준


배우 양조아 필모그래피

<워킹맘> 2018

<푸르른 날에> 2017

<은아> 2016

<갈 수 없는 나라> 2016

<씨유투머로우> 2015

<술래잡기> 2015

<이 별에 필요한> 2013

작가의 이전글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 내 차례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