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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츠필름 Jul 26. 2018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영화 <레슨>(2014)



레슨 (lesson, 2014)

감독 : 서인환

주연 : 양지일(준혁) / 이주림(주림)

러닝타임 : 23분


- 제9회 대전독립영화제 : 심사위원특별언급

- 제15회 광주국제영화제

- 제15회 대한민국세계청소년영화제

- 제16회 장애인영화제

- 제17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시놉시스>

 준혁은 감각성신경 난청으로 갑작스럽게 청각을 잃게 되어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1년 후 농학교로 전학을 간다. 바뀐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준혁은 같은 반 주림이 교실에서 춤추는 것을 보게 된다. 주림은 준혁에게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주림은 좌절해 있는 준혁에게 장애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게 되고 준혁은 다시 한번 꿈을 향해 한걸음 내딛게 된다.

배우 양지일이 들려주는 영화 <레슨>(2014)


  제가 4년 전에 참여한 작품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의 준혁은 지금까지 춤을 췄던 아이예요. 사실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데 갑자기 청각을 잃었으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어요.     

  1년 후 농아학교에 들어가게 돼요. 물론 적응도 잘못하고 지내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스피커를 들고 교실에서 춤을 추는 주림을 만나요. 준혁에게는 그 모습이 매우 놀라운 일이었어요.

  영화는 주림과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점을 체득하면서 겪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저를 제외하고는 전문 배우가 아닌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이에요. 배우들이 아님에도 그곳에 있는 친구들의 연기는 연기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어요. 그들에게는 실제 삶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는 살면서 나쁜 말, 안 좋은 말들 원하지 않아도 듣고 살게 되잖아요. 저기 있는 친구들은 안 그랬어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수해요. 그냥 천사처럼 보였어요. 사회의 때가 전혀 타지 않은, 연기인 것을 알지만 연기 같아 보이지 않는 느낌.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은 대사가 거의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삶의 일부를 찍어낸 듯, 이 친구들은 그냥 본인의 삶 그대로 임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루 만에 수화를 배워야 했어요. 잠깐 쉴 때도 계속 배워야 했죠. 아마 긴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는 편집하시느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상황에 아무리 집중해도 몸으로 대화를 전달하는 것은 잘 기억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주림’ 역할을 맡은 배우의 힘이 정말 컸어요. 그 친구에게 참 고맙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은 다 소리가 들리지 않은 세상에서 나 혼자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어느 순간 ‘말은 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됐던 것 같아요. 몸짓으로 대화를 하는 것, 새로운 언어가 생긴 것 같은.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든 수화가 기억나진 않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동작들이 있어요. 역시 영화에서 받은 경험은 중요한 것 같아요.      



  울림으로 춤추는 것에 대한 장면이 나와요. 손으로 톡톡, 칠판을 두드려요. 사실 저 공간에 굉장히 많은 스텝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 같이 저 소리, 울림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 톡톡.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한 감각에 한마음으로 집중한다는 건 놀라운 집합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관에서 보면 굉장히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쓴 영화예요. 촬영을 마치고 소리 때문에 감정적으로 울림을 받은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무이한 것 같기도 해요. 저로서는 굉장히 좋은 역할을 부여받은 거였죠.



  여기 있던 친구들은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난 왜 듣지 못하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넌 들리고 난 들리지 않는 소리인데 그게 왜?’라는 방식으로 접근을 해요. 위 장면 속 대사도 자신의 상황과 다르지 않은 마음의 말인 거죠.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서 봤을 때 들리지 않는다는 건 춤을 추지 못하는 한계점이 아니에요. 그래서 정말 자연스러운 거죠. 

  ‘들리지 않으면 불행해?’라는 이 말은 ‘주림’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 저에게 건네었던 말이기도 해요.



  감독님이 춤을 잘 추셨었어요. 그래서 저와 상대배우가 함께 배웠어요. 저에게는 이 장면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면서도 현실 그 자체였어요. 



  수화 이름은 자기가 몸짓을 만들어요. 그래서 자기 이름을 말하는 장면도 굉장히 중요해요. 자신을 드디어 온전히 인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이제 다시 자기를 찾는 시간이 시작된 거예요. 



  저도 영화 [레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많은 부분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첫사랑 같은 영화죠. 누구든 이 영화를 본다면 첫사랑 같은, 계산 같은 것 없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그 스텝들과 제가 그랬듯 여러분에게도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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