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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츠필름 Aug 09. 2018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영화 <동아>(2018)


동아 (Dong-a, 2018)

감독 : 권예지

주연 : 심달기(동아), 김현목(지훈), 류경수(운동화남)

러닝타임 : 40분


-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 한국단편경쟁 대상

- 제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 심사위원 특별상 연기부문

-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시놉시스>

동아는 운동화를 사고 싶다. 

배우 심달기가 들려주는 영화 <동아>(2018)


  <동아>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인서트를 제외하고 열 테이크 정도 찍었으니까 처음 장면에 힘을 줬다고 생각해요. 보면, ‘동아’라는 인물은 평소에 뚱하거나 냉소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지훈이랑 있을 때는 반대로 밝은 모습으로 있어요. ‘동아’의 평소와는 다른 부분을 보여줘야 했던 거죠. 시나리오상에서 ‘동아’는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퉁명스러운, 소위 말하는 날라리 여자애였어요. 그런 상황을 인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게 ‘동아’처럼 안 보일까 봐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날티 나는 것과 털털한 것의 차이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동아는 어떤 애일까?’, ‘동아가 이 상황에서 어떤 성격을 드러내 보일까?’ 등에 대한 고민을 끝까지 많이 했어요.

  <동아>는 프로덕션 자체가 굉장히 길었어요. 처음 제가 <동아> 시나리오를 받았던 시기가 작년 2월에요. 실제 촬영을 끝마친 시기는 11월이었어요. 작년 6월에 촬영했다가 장마 때문에 취소되기도 하고 중간에 배우가 교체되는 등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에요. 


  이유경 선생님(미자 역)은 중앙대 연기과 선생님이었어요. 감독님의 어머니랑 굉장히 닮았어요. 실제 ‘동아’가 지훈의 집에서 나와, 밑에 집의 싸우는 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구경하시던 분 중 한 분이 감독님의 친어머니였어요.

 

  처음 미자와 동아가 몸싸움을 하고 그 바람에 구슬 쏟아지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에서 감독님이 원했던 것은 구슬이 한꺼번에 자동으로 다 같이 쏟아져야 해서 어려웠어요. 연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몸싸움하는 장면에서 제가 계속 고개를 숙여버리더라고요. 원래 감독님이 요구하신 것은 악착같이 바득바득 물고 늘어지라고, 엄마와 딸 관계가 아닌 것처럼 싸우라고 하셨어요. 시간순으로 보면 ‘동아’의 집 장면이 먼저 발생하지 않고 미자가 일하는 집에 찾아가는 장면이 먼저였어요. 그래서 감독님은 동아와 미자의 관계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모르게 하고 싶어 하셨던 부분도 있었어요.


  동아가 미자와 가정일을 봐주는 집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7월 6월에 다른 버전으로 한 번 더 찍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영화 <동아>는 매우 긴 작업이었고, 그 긴 여정을 보내면서 달라진 게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미자의 캐스팅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이젠 미자 역할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소주를 컵째로 가득 담아 마시는 장면은 굉장한 디테일이 있어요. 동아와 미자가 싸우는 장면은, 시나리오만 봤을 때도 충격적이었어요. 진짜 독하게 싸우잖아요. 저는 싸우면서 제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거나 누군가와 다툰 경험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괴로웠어요.

  지훈의 집에서 나오며, 지훈의 집 아래에 미자가 가정일 봐주며 못 받은 ‘오만 원’ 때문에 머리채를 붙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동아는 이제는 다니지 않는 학원을 가서 교실 밖에서 지훈이 다른 여학생과 손잡고 있는 장면이 나와요. 저는 이 두 장면의 동선이 비슷한 느낌을 줘요.

  ‘동아’는 일어나는 현상의 외부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의 외부에서 바라보는 거죠. 하지만 그 환경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그 상황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거나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키려는 인물은 아니에요. 동아는 어떤 상황에서는 방관자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자신을 제외한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상황을 바라만 보는 거예요.

  동아의 집은 방이 두 갠데 한 방은 안 쓰는 방이었고 다른 한 방에서 엄마와 같이 지내고 있어요. 사춘기 동아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게 분리가 안 되니까 계속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요.


  이태경 배우(미란) 분량이 더 많았었는데 많이 삭제됐어요. 예를 들면 동아가 미란에게 돈 있냐고 물으면서 스케치북에 본인의 이름을 계속 써요. 지금은 미란이 동아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 공책에 자기 이름을 계속 쓰는 설정인데 전에는 한 장당 동아가 500원을 받고 쓰는 설정이 있었어요. 미자가 만든 팔지를 미란에게 하나 주는 장면도 있었어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단편의 분량에 맞추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동아가 미란을 만날 때는 학교 뒷골목에서 만나요. 그리고 친구들이 ‘미란이 왔다!’고 할 때 이거나 쟤 ‘임신했데’라고 하며 수군거릴 때 동아는 아무 반응하지 않아요. 동아에게 미란은 창피한 하수인처럼 느껴져요. 돈을 받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동아가 유일하게 자기의 가장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깎아주세요.’ 

  동아가 운동화를 사기 위해서 중고사이트에서 만난 운동화남(류경수)을 만나요. 동아의 입장에서는 어색하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나와요. 동아의 안타까운 생존 방식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요.           


  동아의 교복이 타이트해서 움직이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좀 노는 여학생의 어수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제가 직접 화장을 했어요. 자세히 보면 화장을 정말 어린 친구들이 했듯이 어색하게 한 것이 보여요. 그리고 동아가 맨바닥에 앉는 장면이 많은데 자세히 보면 멍이 많아요.           

  춘추복을 입을 때인데 동아가 하복을 입는 이유는 동아와 지훈이 처음 만난 시기가 하복을 입을 때였기 때문이에요. 동아는 그때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데 지훈은 지금 춘추복을 입고 동아에게 ‘너희 학교는 춘추복 안 입어?’라고 묻는 것처럼 지훈의 상태는 변하고 있어요. 

  동아는 ‘나는 이게 좋은데’라고 말하죠.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겹쳐서 나와요. 예를 들어 게임하는 중에 지훈과 동아가 춤을 출 때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서 춤을 추거나, 운동화남을 만날 때 둘 사이에 트리 모양의 불이 비추기도 하고요. 지훈과 동아가 모텔 가는 장면에서, ‘오만 원이래’라는 대사도 너무 잔인하죠. 그러면서 닫혀가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역시나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여요.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은 동아가 성적 대상화가 되었을 때 나와요. 그리고 동아의 치기 어린 마음 같은 것이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는 동심이 있고, 그런 동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한다고 하면, 크리스마스에 대한 개념이 아니었을까요. 


  동아가 지훈의 집에 갔을 때 둘이 말다툼이 생기자 동아는 갑자기 틴트를 찾아요. 동아와 지훈의 관계에서 지훈이 동아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걸 보여주는 다툼이에요. 동아가 지훈에게 화를 내거나 자기 생각을 주장해봤을 때 그게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틴트를 찾으면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장난으로 넘기고 싶은 거죠.      

  류경수(운동화남) 배우가 정말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후시녹음을 하는데 입 모양도 크지 않고 굉장히 빠른 템포의 대사들이 있었는데 녹음을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동아>에서 운동화남의 역할이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 주는 장면 같기도 해요.


  동아와 운동화남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비행기 소리가 나요. 촬영할 때 실제 운동화남의 집의 내부와 외부가 달랐는데 외부의 장소가 비행기가 낮게 나는 동네였어요. 비행기 소리는 그때 외부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현장 당일에 따로 소리를 따서 넣었어요. 비행기 소리가 날 때 둘은 어떤 말을 하는데 두려운 부분은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보여요. 


  운동화남이 동아의 가방을 뒤지는 장면에서 가방에 책이 한 권도 들어있지 않아요. 전에 미자가 맞춤법이 맞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것처럼 동아도 맞춤법을 틀리게 적은 게 편지에 많이 보여요. 아직 어리고 미숙한 동아에요. 그리고 미자와 닮았죠.     


  ‘뛰지 말고 걸어가’라고 운동화남이 말해요. 하지만 동아는 그의 집에서 나오면서 또 뛰어가는 모습이 보여요.     

  찍으면서 제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전혀 감이 없었어요. '나 어떻게 너무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제 가서야 ‘아, 그랬구나’ 했어요. 영화 찍을 동안에는 못할까 봐 아니면 잘못했을까 봐 끙끙했던 생각이 나요.                


  ‘동아’라는 이름은 동아줄의 이름을 빌렸어요. 동아가 잡은 줄은 썩은 동아줄이에요. 동아도 그 줄이 썩은 걸 알고 있는데 붙잡고 있는 거예요. '동아'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지게 됐고, 의미를 생각해보면 잘 지어진 이름 같아요.


  <동아>는 저에게 있어서 지금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지금도 문득문득 그 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연기에 그리고 연출에, 글 쓸 때 생각해요. 그때 만난 사람들도 그렇고요. 한 단계 발전을 한 느낌이 들어요. <동아>를 통해 제가 성장한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성장하는 순간을 만나게 해주는 영화였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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