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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pr 27. 2020

뫼비우스의 띠: 시작과 끝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시작. 

내 나이 40대 초반. '시작'에 대해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끝'도 함께 떠오른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시작에서 끝으로 흘러가는 방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방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작은 끝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 둘은 맞붙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그 무언가의 끝, 마무리, 맺음이 필수적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인가가 끝나면 기쁨이나 아쉬움 성취감, 때로는 두려움,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기억할 수 있는 시작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역시 그 모든 시작의 처음에는 무엇인가의 끝이 있었다. 새로운 학기의 직전에는 그 전년도의 학기가 끝이 났었다.  기혼자가 되기 이전에는 미혼으로서의 삶의 끝남이 연결되어 있다. 30대의 끝에는 40대의 시작이 있었고 싱글맘이 되기 직전에는 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마쳤다. 


 살아오면서 상황과 시기에 따라 긍정적인 끝이 있기도 하였지만, 힘겹고 절망적인 끝도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후자의 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 개인의 삶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과 절망의 끝과 그 이후 다가오는 시작에 대해서 말이다. 

 길고도 어려운 고민 끝에, 나는 이혼으로  몇 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혼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주변 모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큰 사건이다. 하지만 결국 그 이혼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이혼은 그 당사자들의 삶에 큰 마침표를 찍는다. 마치 나의 인생이 그 시점, 그 위치에서 끝난 것만 같고, 미래도 당장 보이지 않는다.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린 듯 허무한 마음이 들고, 그것을 나 때문에 감당해야 할 아이에 대한 염려와 죄책감도 상당하다. 그 상황에서는 오직 '끝'이라는 생각과 절망감만 가득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 건지 저 밑바닥에 있던 생각들까지 모두 휘몰아쳐 올라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괴롭고 모든 게 멈춘 것 같은 기분과 상황 한가운데에 내가 놓여있더라도,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간다. 내게는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마음이지만, 세상은 계속 나와 무관하게, 일상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제까지 내 감정에만 빠져 허우적 댈 수 없고, 삶을 살아가야 했다. 

 나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아이의 새로운 유치원을 알아보고, 새로 일할 곳을 알아봐야 했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주변에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나의 무거운 마음과 무관하게 평온한 세상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한동안은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는 말을 되뇌며 힘든 마음을 다스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와 아이에게 닥친 그 '끝'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기 위해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큰 도전을 결심했다. 내 감정에만 빠져 살 수는 없기에,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우리 둘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그것은 임용고시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고민해봐야 했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도전인데,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최소한이어야 했다. 부모님 댁에서 잠시 같이 산다고 해도, 아이를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서 언제까지고 그 시험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이 먹고서 부모님께 공부할 테니 경제적으로 도와달라고 말하기에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하던 직장에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가 등원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활용해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모로 힘들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아이와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했다. 하지만 최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서 마음을 다잡고 눈물을 머금고 공부했다. 이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나이 들어 아이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 임용시험이 나에게는 최선의 방향이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여러 제약과 심적 고통이 있는 상황에서 공부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외운 걸 잊어버리는 날에는 답답한 마음에 절로 흘러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살아온 동안 제일 독하게 살았던 약 1.5년간의 수험생활 끝에 나는 기적처럼 합격했다.  합격하고 나면 울거나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기뻐해 주었고, 내게 제일 많이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 이제 어느 정도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있겠구나, 아이에게 짐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돌아보니, 끝에는 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상황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끝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움틀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발을 시궁창에 담그고 있지만, 그중 몇 은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그 말처럼, 나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정신 차리고 용기 내어 새로운 시작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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