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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26. 2020

당신과 나의 안전한 거리를 위하여

 나의 출퇴근 시간은 길다. 경기도 남부에서 북부까지 왕복 100km쯤. 

매일 그 긴 거리를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만 있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지루하다. 막히는 구간을 이용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노래도 듣고 통화도 하고 화장도 한다. 그러다가 요즘 날 괴롭히는 걱정거리나 터무니없는 상상 등 나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운전대를 잡고 앞을 주시하기는 하지만 지루해서 언뜻 지나가는 길 위의 이런저런 것들을 지나가는 찰나에 쳐다보며 여러 생각도 한다.     

‘분명히 터널 진입 전에 커다란 간판이 있었는데 이상하네? 내가 오늘 지나쳤나?’

터널 진입 직전 오른편에 아주 큰 간판이 있었다. 영어로 쓰여 있었는데 읽어보면 한글로도 다른 해석이 되는 이름이었다. 까페 Grip-G.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 간판을 보고 이름 특이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다. 

 간판을 보고는 상상해보았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을까? 돈을 주고 지었을까? 아니면 지인이? 사장 본인 스스로가 고심 끝에 만든 이름일까? 이름을 짓고 나서는 만족해하면서 웃었겠지? 간판이 만들어져 붙이고 나서는 얼마나 희망에 차고 뿌듯했을까? 정말 그랬을까? 등의 생각이 스쳤었다. 운전하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간판에, 큰 글자로 쓰여 있었는데 없어진 것 같았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틀이 더 필요했다. 눈을 크게 뜨고 그쪽을 쳐다보며 지나가는데 하루, 또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지나가면서 쳐다본 또 다른 하루.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는 카페의 사정도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오리고기 집을 보면 근처에 산도 있고 꽤 분위기도 좋고 맛있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근처에 산등성이도 있고, 등산객이 좀 있으려나? 그럼 내려와서 오리고기 먹고 싶겠네~ 분위기도 괜찮아 보이는데 먹어보고 싶다. 이쪽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길이 나 있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 집을 가볼리는 만무하다. 출근길, 집에서부터 먼 거리에다가 출근길을 쉬는 날까지 운전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근하면서는 괜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장거리를 운전해보기는, 그것도 매일 해야만 하는 상황은 처음이다. 그 전에는 아이를 태우고 동네 근처나 친정 정도만 왔다 갔다 했었는데..

“아우 씨 깜짝이야..” 옆의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하는 내가 아니었다면 방금 사고 날 뻔했다고 혼자 의기양양하기도 하다가 저렇게 예의 없이 운전할 수가 있을까 화가 나기도 한다. “저렇게 급하면 어제 나오던가..” 혼자 말하다가 그 말에 웃겨서 또 혼자 웃었다. 이러다 보면 혼잣말의 달인이 될 것 같다. 

 출근길과 퇴근길에 장거리 운전하면서 나의 실수 때문에, 또는 상대방 자동차 때문에 아찔하기도 하던,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었던 순간들을 여러 번 겪으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서야 운전이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유사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다가 어느 순간, 어떤 물리적 상황으로 직접 눈으로 보일 때 생각 속에서 추상적으로 존재하던 것이 정물화처럼 명확해지는 순간이 있다. 자동차와 내가 주변을 대하는 태도의 유사성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경적

 자동차를 사고 나서 나는 경적을 몇 개월 동안 울리지 않았다. 못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울려야 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이없는 상황이나 갑자기 벌어진 도로 위 놀라운 상황에서 토끼처럼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경적을 울릴까 망설이며 손을 그 앞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여러 번이었다. 

'아니 나는 얼굴 아는 사이도 아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에게도 시원하게 '빵'한 번도 못 날 린단 말이야?? 나도 참 병이다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급하니 빨리 비키라고, 또는 내 자동차가 자기 차의 길을 막았다며 연거푸 경적을 울려대는 차를 가끔 만나면 속에서 짜증이 올라온다. 

'뭐가 저렇게 급할까...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잖아. 급하면 어제 나오던지 아니면 경비행기를 사던지 하지 쯧.' 

 경적을 울려대며 자신의 화를 가감 없이 분출하는 자동차도 있는데 나는 필요할 때 경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꼴이라니. 내 자신이 참 답답하게 여겨진다.     


#사각지대

 야근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안경을 꼭 쓴다. 밤 운전은 항상 긴장이 된다. 나름 이리저리 살피고 차선을 바꾸려는데 경적이 울려댔다. 

“어머머머 미안해요. 아 깜짝이야..” 

앗.. 분명히 백미러, 사이드미러로 안 보이던 차였는데... 사각지대였다. 정말 너무 놀라서 손에서 땀까지 난다. 방금 순간이 얼마나 위험했던지를 되짚어보며 여전히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휴... 저 자동차가 나에게 경고음을 보내줘서 다행이야...' 

 진정이 되고 나자, 방금 있던 일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며 또 그런 상황이 없도록 조심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경적을 울리는 게 꼭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겠네. 내가 바로 뒤에 있어. 너 위험해. 그만둬. 너 들어오면 사고 난다. 이런 의미일 수도 있는 거잖아. 때로는 위험하다고 경적을 울려주는 게 다른 차를 도울 수도 있는 거구나.. 왜 난 나쁜 쪽으로만 생각했을까?'     


#관계

 자동차의 경적과 사각지대.. 일련의 상황 등을 통해 인간관계에서의 나의 대처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상대방이 내 공간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내가 불편할 때, 나를 배려하지 않는 듯한 상황 앞에서, 나는 보통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혼자 노력하거나, 싫은 소리를 피하려고 속으로 참고 만다. 하지만 속은 편하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다. 

'상대방은 당연히 내가 불편한 걸 알 텐데, 상대방 상황이 이러저러하니 내가 참자. 아니 근데 저 사람은 내가 이런 기분을 느낄 거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거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이런 생각은 점점 쌓여서 스트레스가 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모이고 모여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역할을 하고 만다. 사실 상대방은 사각지대였던 것처럼 내 불편함이나 혼자 참고 있는 내 인내심을 못 보고 있을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내 의견을 어느 정도는 표현해야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나 상대방 모두에게 말이다. 내가 표현을 하면, 상대방이 불쾌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놔두면 그것이 오히려 관계에서 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뒤차가, 위험하게 끼어드려고 하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지 않아 접촉사고가 나는 것처럼. 그냥 아무 소리도 안 냈다가는 내 자동차는 온갖 잔상처가 나고 어쩌면 찌그러질지도 모르겠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병원에 실려 갈 수도 있겠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그런 경적 말고 진짜 위험하거나 상대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을 때의 그런 경적은 꼭 소리 내 눌러줘야 할 것 같다. 서로의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     


#발전

 위에 적은 생각을 몇 달 전에 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알고도 행동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옆 차가 급하게 끼어들거나, 앞차가 급정거하거나 하는 불안한 상황 앞에서 나는 또다시 동그란 토끼 눈을 해 가지고 운전대 앞에 손바닥도 아니고 주먹을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소리를 내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주먹을 쥐는 이유는 손바닥으로 누르면 너무 길고 크게 소리가 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바닥으로 누르려면 힘도 많이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또 옆에서 차가 불쑥 들어오려고 하길래 나는 이때다 싶어서 주먹으로 운전대를 두 대 쳤다. 그 소리는.. 커다랗고 당당한 빠~~ 앙 이 아니라 마치 뿅뿅 같은 작고 소심한 소리였다. 그 소리랑 내 모습 때문에 혼자 웃었다. 

“아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참나.. 흐흐.. 나도 참.. 그래, 성격이 어디 가겠어?..”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이게 시작이겠지? 

“그래, 시작이 중요하지, 잘했어!! 다음엔 좀 더 힘을 넣어서 눌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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