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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24. 2021

프리지어

식물이 해준 위로

이십 대.

그냥 그 나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때의 내 기분을 기억해보아도 괜히 뭔가 설레는 기분이 살짝 들고, 봄같이 살랑살랑한 마음이 들었던 나이 같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좋기만 해도 좋을 20대 초반, 스물두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예고 없이 자가면역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에 걸렸다. 감기도 잘 안 걸리던 나여서, 처음에는 계속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장염에 걸렸나 하고 말았던 게 전부였다. 그리고 정확한 시간은 기억 안 나지만 하루 이틀 침대에 누워있다가 화장실 갔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냥 무기력하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만 들락거리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는데, 퇴근하고 온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세상에..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더니 이대로 가면 너 큰일 나겠다


 온몸에 기력이 빠져 움직이기도 귀찮아하는 나를 데리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셨다.

응급실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기다렸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몸이 엉망이라 집에 못 간다고 말하셨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입원을 했다.

병동 자리가 없어서 응급실 복도에 놓인 침대에서 몇 날 며칠을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몸에 기력이 없고 아파서 응급실 복도에 조명이 있는지 꺼져있는지,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가 희미하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간간히 응급실내 어떤 침대에서 누가 사망했는지 통곡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도 들려서 마음도 심란했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나 또한 너무 아파서 크게 신경 쓰지는 못하고 그냥 쓰러지듯 거의 하루 종일 얕은 잠에 빠져있었고, 바로 이런 게 아비규환, 생지옥인 것 같다고 느꼈었다. 추가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누워있다가 20여 년 지난 지금까지 내 주치의 선생님이신 분을 처음으로 만났다. 내 침대맡에 오셔서, 이제부터 나랑 자주 만나게 될 거라고. 내 병명은 궤양성 대장염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고 나서 병실 자리가 나서 위층 내과병동에 입원했다.


왜 발병하는지도 모르고 상태가 위중해도 약을 먹어서 바로 낫게 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다만 부작용이 있는 약이더라도 스테로이드제를 먹어 증상이 잦아들도록 조절해야 했다. 그래서 입원 기간이 아주 길었다. 20대 초반에 두 번 입원을 했는데, 한 번은 응급실에서 있다가 입원했던 2주 정도였고 다른 한 번은 거의 2달을 입원했던 것 같다.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면, 미친 듯이 식욕이 당긴다. 보통 당기는 게 아니라 무서울 정도로, 내 식도에서 신물이 올라오는데도 자꾸만 먹고 싶어 진다. 그리고 약 때문에 얼굴은 동그랗게 붓는다. 문페이스라고 불리는 부작용이다. 머리카락은 약간 빠지고 몸의 털들은 자란다. 근육은 줄어들고 피부는 얇아진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증상이 완화될 수도 있다고 하니 먹기는 해야 하는데, 20대 초반의 나는 스테로이드를 먹는 기간 동안 점점 거울을 보기가 싫어졌었다. 20대는 꾸미는 것 좋아하고 친구랑 놀고 연얘 하고 그냥 즐거울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다. 하긴 사실 몸이 힘들어서 거울을 볼 여유도 없기도 했다.

궤양성 대장염은, 내 면역체계가 어떤 오류에서인지 내 장벽을 스스로 공격하는 상황이라 장벽에 생긴 염증에서 피가 나오는 게 심할 때의 증상이다. 그래서 항상 빈혈에 시달려야 했다.  어딜 가든지 화장실 위치부터 확보해야 했다. 화장실을 자주 가면서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거나, 나 때문에 불편해질까 봐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수많은 약을 삼키기 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떻게 이 약들이 나를 살아있도록 해줄 수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내 뇌가 내 몸을 통제할 수가 없단 말인가? 이렇게 내가 약에 좌지우지되는 그런 존재인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무기력하다고 느껴졌었다.


어디선가 듣기를, 병에 걸리면 지나는 단계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그게 맞는 것 같다. 나도 그 단계를 어렴풋하게 거쳤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그리고 우울 단계는 정말 혹독하고 길었던 것 같다.

그 무기력함과 슬픔, 슬픔의 바닥인 것 같은 우울감. 그리고 어떤 것을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것 같은 깊은 절망감.

매일매일 누군가가 나를 죽여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인질로 잡혀서 죽거나 흉기에 찔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끔찍한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그만큼 심각했다.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었다. 내가 방에서 키우고 있는 토끼는 어떡할 거며 죽을 때 아플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시간이 날 때마다 죽는 장면을 상상하거나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었다.  


옛날 말 틀린 것 없다더니 그렇게 마음이 극도로 힘들다 보니, 그 힘듬이 몸으로 왔다. 2달간의 긴 입원은  그 우울증 뒤에 병 증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입원 기간 동안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엄청났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스스로 살아서 이곳에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일이 있었다. 같은 내과병동 병실에 입원 중이던 환자분이 밤중에 사망하였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 바로 옆의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에 무서워서 쇼크를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사실은 나는 살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이 방향을 바꾸자 몸도 기적적으로 증상이 완화되어, 대장을 제거하는 수술 날짜까지 잡아놨다가 퇴원하게 되었다.


우울했던 시기에 내방 한구석에 방치해두었던 히야신스 화분을, 그제야 방청소를 하면서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치우려고 드는 순간 그 화분 속 흙에 단단한 싹이 나와있는 게 보였다.


아… 히야신스… 죽은 게 아니었어. 그동안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금 다시 싹 틔웠나 봐.


왠지 감동적이어서 화분을 들고 한참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내 마음이 황폐해서 모든 게 귀찮아 방치해두고 버리지 않았던 건데 그렇게 해서 이렇게 히야신스의 싹을 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패턴대로 꽃을 피우고 졌다가, 뿌리에 양분을 모으며 땅속에서 다시 나올 때를 기다리며 있었던 히야신스. 나도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은 땅속에서 뿌리를 키우면서 다시 나올 때를 기다렸다고 생각해도 될까?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죽은 게 아니었잖아. 다시 이렇게 싱싱하고 굵은 싹을 틔웠잖아. 나도 그럴 수 있겠지?


그날 식물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구근식물들이 좋다. 그냥 그렇게 때를 기다리며 뿌리로 웅크려 있다가 다시 싹을 틔우는 생명력. 옆에서 보고 있으면 대견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나도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내면 그렇게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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