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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0. 2022

뜨개질

가끔 나는 뜨개질을 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기 시작하면서 작년에 뜨다가 한구석에 넣어두었던 실뭉치와 대바늘을 꺼내 들었다.


가을, 겨울만 되면 뭔가를 뜨고 싶어 진다. 떠서 아들 목에도 걸어주고, 직장을 떠나오면서는 소중한 이들에게 가방도 떠주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에겐 목도리와 무릎담요도 떠서 선물했었다. 작년에는 바라클라바 뜨기 DIY 키트를 두 개 사서, 아들이 고른 짙은 빨간색으로 완성해서 선물해주고 내 것을 뜨다가 날이 슬슬 더워지길래 한구석에 몇 개월 동안 처박아두었었다.  


올해 날이 시원해지자마자 작년에 뜨다 말았던 내 카키색 바라클라바를 다시 뜨기 시작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떠주었던 것 같아 올 가을과 겨울에는 내 것을 뜨기로 했다. 바라클라바 하나와, 거대 숄 하나.

뜨개질의 매력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많다. 아마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동의할 것이다.

목도리든 바라클라바던 모자던 사서 쓰는 게 훨씬 예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격적인 면에서도 저렴하다. 절대 직접 만든다고 비용이 절감되거나 알뜰한 게 아니다. 뜨개질은 시간과 정성, 마음을 담는 일이다. 내가 떠준 편물을 받아 든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저 대바늘이나 코바늘로 일정한 패턴대로, 내가 원하는 패턴대로 한 땀 한 땀 실을 돌려가며 떠간다.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려서 잠깐 하면 30분은 금방 간다. 그리고 그 시간을 뜬다고 내가 뜬 성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 시간, 한 시간 반 뜨고 나면 아니면 하루 지나 내가 뜨고 있는 중인 편물을 들어 올리면 그 차이가 눈에 띈다. 그렇게 점점 조금씩 길어져가며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은 온갖 걱정도 사라지고 집중하게 된다. 때로는 단마다 다른 방향으로 떠야 해서 집중해야 하고, 단수 체크를 해야 하거나 꼬임 무늬를 넣어야 할 때는 초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 겉 뜨기나 안뜨기가 반복되는 줄에서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진공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또 몇 줄이 완성되는 것이다.


뜨개질을 할 때마다 생각이지만, 참 인생 같다고 느껴진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보통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같은 일의 반복이거나 기껏해야 방향 바꾸기, 실 순서 바꾸기 등과 같은데, 며칠이 쌓이면 그리고 그렇게 몇 주,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뭐가 변했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들 목도리나 방울모자, 바라클라바 등을 뜰 때 아들에게, 너에게 줄 거라고 얘기하고 뜬다. 그러면 아들은 매일매일 엄마가 자기를 위해서 얼마나 더 떴는지 확인해보고 행복해하고 고마워하곤 했다. 그 모습이 나도 좋아서 자꾸만 떴던 것 같다. 그리고 아들이 따뜻하게 내가 만들어준 것들을 착용하면서 엄마의 사랑을 느끼라고.. 친구에게 자랑할 거리도 하나 더 늘 겸 말이다.


요 몇 년간은 그렇게 다른 사람의 무릎이나 목을 감싸줄 선물용으로 뜨곤 했는데, 올 겨울에는 온전하게 나를 위한 뜨개질이다. 남들한테 떠주면서 뜨는 시간 동안 내내 진심으로 바랐듯이.. 이번에는 나도 따뜻하라고..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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