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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Dec 16. 2023

베이스에 꽂히다

나는 어떤 악기일까?

락밴드.. 인디밴드 등의 연주와 노래를 듣기 시작한 건 중학생 무렵부터이다.

사춘기에는 그 장르의 매력에 푹 빠져서 록 음악의 강렬한 악기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유행하던 컴필레이션 앨범들로 다양한 록음악, 락발라드를 들었다.


듣다 보면 맨 처음 귀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가사를 부르고 있는 보컬이다. 가사에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머릿속에선 어느새 소심한 내가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 듣다 보면 그 다음으로 기타 소리가 들어온다. 밴드 곡에는 기타 솔로 부분이 있는 곡이 꽤 있어서 그 부분을 듣고 있으면 무대 뒤쪽에 있던 기타리스트가 앞으로 나와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기량을 뽐내는 모습이 상상이 되고 또 그 자리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하면서 곡을 들었다.

때로는 드러머가 되어보는 상상도 해봤다. 그런데 베이시스트가 되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상하지만 그렇다.


그런데 요즘, 40대에 들어서 나는 베이시스트가 귀에도 눈에도 더 와닿는다. 기타리스트처럼 솔로 연주할 기회가 빈번하지 않고, 자기 위치에서 묵묵하게 본인의 곡을 연주하는 그들이. 물론 가끔 아주 가끔 베이시스트도 라이브 등에서 솔로연주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럴 때는 와.. 정말 멋지다! 하고 감탄하게 된다.


내가 자라오면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막상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서 나는 내가 베이시스트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컬처럼 또는 기타나 드럼, 키보드처럼 귀에 와서 박히는 맛은 덜 하지만 베이스 만의 중저음으로 음악을 완성시키는 소리를 가지고 있다.


직장에서 일 년에 다섯 번 심리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했었는데, 작년에 나는 상담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꾸만 저는 중간에 껴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떤 집단이든지..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는 건가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나의 고민을 들은 상담가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어떠냐고. 그리고 중재자들은 리더처럼 앞에서 빛나거나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따르진 않지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역할을 그 자리에서 하고 있다고, 본인은 리더 못지않게 중재자들이 집단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잠깐 그 자리에서 생각해 봤는데, 왜 내가 중간에 자꾸 끼는지. 직업이든 가족구성원 사이에서든 항상 중간에 껴서 양쪽의 이야기를 전달받으며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지 스트레스받던 나의 모습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나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니까 훨씬 나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 때 내가 그걸 바꾸지 못한다면 내가 그걸 바라보는 태도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좋은 것이기는 하지. 그런데 중간에 끼는 것을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니 이렇게까지 마음이 달라질 수 있구나.


베이스 소리를 듣다 보면 그런 나의 모습과 상황들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에서 그 둘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 베이스는 밴드에서 그 소리가 튀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 특유의 중저음으로 밴드 내 모든 소리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각각 튀는 악기와 보컬을 아우르는 악기. 그리고 베이스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더라도, 없어지면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악기라는 생각도 든다. 베이스 주자는 매번 빛나진 않지만 묵묵히 그 자리에서 본인이 연주하는 곡을 박자에 맞추어,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음악을 완성하는 그런 역할이 주어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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