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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일상

한 발자국

아마도 이건, 직업병인가

by 하루

2주 만에 상담하러 가서 요즘의 고민과 심란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서모임에서의 누군가의 선을 넘은 행동, 그리고 직장에서의 갑질.

그런 것들로 인해 내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큼 침해받았는지, 그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화나고 당황스러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니 상담가가 뭔가를 짚어주었는데, 사실 그건 내가 이미 일기장에 휘갈겨 쓴 부분과 동일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에도 얼핏 들어가 있는 내용인데,


냉정하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생각해 보면, 그 둘 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고 내 직장, 내 모임에서 일어난 일일뿐 내 목전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분노하고 스트레스받아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쉽지가 않다.

물어보시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는 했다.


또 이용당한 거 같아서요?? 내가/내 모임이..
내가 그들 담임도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책임을 묻거나 뒷수습을 내가 해야 하는지 싶어서요?

불의가 일어났는데 그걸 묵과한다면
그걸 내가 포함된 집단이 허용한 것처럼 또는
아무 반항 없이 그 행동을 한 존재에게 힘을 준 것 같아서요?


도저히 모르겠다. 생각을 얼마큼 하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상담가는 내가 이상과 현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음. 내가 조금 이상적이긴 하다.

그리고 성인남녀가 모이는 독서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게 진심이 아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내일이 아닌데 전면에 서서 내 온몸으로 굳이 받아내면서 힘들어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이런 게 사실, 이혼 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문득 든 생각인데 권력이나 부당함에 맞서 큰 소리를 (아무리 뒷감당으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받더라도) 내기 시작한 건 이혼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어른들 말을 잘 듣고 항상 순응하고 하라는 대로 착한 길로 살아왔는데 얻은 게 내 속병과 이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었다. 중간 과정은 다 빼고 그냥 앞뒤를 붙여보면 그렇게 되었다는 억울한 생각에서였다. 그 이후 직장에서 권력자/관리자에 대항해서 혼자 독대를 30-40분이라도 해야 울분이 풀리곤 했다.

그런데 나 혼자를 건드린 건 그나마 참지만 단체를 건드리거나 신념이나 가치관에 관련한 것들에는 참지 못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지만 인간들이 너무 징그럽고 자기 객관화가 이렇게 안 되는 건가 싶다.

욕심은 앞서고 실력이나 현실이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 품는다는 자체가 꼴 보기 싫다.


가끔 술을 먹어서 실수했다는 범죄자의 변명을 범죄프로그램 등에서 듣는데, 나는 술이 그 사람의 본모습을 풀어준다고 생각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그 자리로 인해 그 사람의 본성이 본마음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생각해 보면 그걸 묵과하든 말든 모든 게 내 책임은 아니지.

장녀이기 때문에? 또는 직업과 관련한 과도한 책임감인가?

반대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옆에서 이 정도로 분노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이기적이고 이해를 따지는 어른들 세계에선 그러기 어렵지.


긍정적이고 통찰력 있고, 추진력 있는 등의 쉽게 얻어지지 않는 그런 장점들이 있으니 내 에너지를 잘 모아서 그런 것에 썼으면 좋겠다고 상담가가 말했다.


생각의 꼬리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내가 왜 그런 것에 반응하여 분노하는지. 그리고 왜 쓸데없는 에너지를 그렇게 써대는지.


정말 어렵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상담가 앞에서 머리를 잡고 물었다.

그걸 다하면 정말 도인의 경지에 오르는 거 아니냐고.. 너무 혼란스럽고 어렵다고.

그건 투정이었고,


일기장 10장을 할애해 페이지 하나당 질문 하나씩 던져둔 그 공간에 조금 또 머물러봐야겠다. 언젠간 실마리를 찾을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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