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약속

여행

by 하루

방학이라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 지인들, 동료들을 만나느라 매일매일이 바쁘다. 예약/수리/병원도 틈틈이. 이 정도면 평소에 어떻게 일하느라 아무것도 못했을까 싶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새벽 6:30에 일어나 다시 자리에 누워서 꼼지락거린다.


온라인 활동은 조금 밀어두었다.

지난번 굳게 마음먹고 독서모임 이제 그만하려 한다고 말하려 했는데, 맘에 걸리던 여자분들 중 한 분이 너무 아쉽다며 아직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격월로 일단 진행하는 거로 공지했다.


오래간만에 한 달을 쉬니 얼마나 고요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이 모임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신경을 쏟았는지 알 수 있었다. 쉬며 생각하니, 나는 그 모임에 또 너무 애를 썼고 진심을 대해 참여하고 운영해 왔던걸 알겠다. 마치 공고문 올리듯 정각에 공지글 올리려고 5분 전부터 긴장하며 대기했고 댓을 달면 이 또한 공식적인 활동처럼 바로바로 댓글 달아주려 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웃기다. 이건 공문서가 아니고 나도 공적으로 일하는 게 아닌데 또 정신 잃고 임하고 있었네.


지금 마음으로는 길어봐야 올해까지인데, 격월로 할 때 조금 느슨하게 운영해야겠다. 그리고 남의 말은 대충 듣기.


아들이 어릴 때 옥토넛 만화를 좋아해서 카드를 만들고 수족관에 다니며 찾고 그랬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고래상어가 있는 수족관이 없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나중에 고래상어 보러 일본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일본에서 좌우가 바뀐 도로를 운전해야 해서 무섭긴 하지만 고래상어 보고 싶다던 아들이랑 다녀오려 했는데 코로나 터지고 몇 년간 해외를 못 가게 되면서 무산되었다. 그 이후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일본도 다른 지역에 다녀왔다) 다녔고 고래상어를 보러 갈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봄이야 이번 겨울에 고래상어 보러 갈래?


좋다는 대답에 12 월 말에 급하게 추진했다.

추운 겨울날 새벽에 눈을 헤치고

아들과 한 시간을 걸어 버스를 타고(눈 때문에 더더군다나 이른 새벽 4:30이라 택시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에 도착하니 이곳은 따뜻하다. 겨울옷을 벗으며 문득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구나. 얼마 전에 읽은 괴테와 융에 대한 책이 떠오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에 대해 생각 중인 요즘이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른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걸 모르나 본데. 나도 혹시 저런 모습은 아닐지 무섭다. 중년에 들어가며 주변에 많이 보이는 상황이다.


여행은 마냥 즐겁다. 남들의 일상이 나에겐 쓰레기마저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나하나 도전이고 어리둥절하고 알아내야 한다. 실수연발이지만 대세에 지장 없는 여정. 내 일상도 그러할 텐데.


첫날은 레일 타고 다니며 모험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 다니고, 둘째 날 드디어 오키나와 북부의 수족관도착이다. 55km를 좌우가 바뀐 채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진다.


아 이곳이 사진으로만 보고 영상으로만 보던 그곳이구나. 아들과 약속을 몇 년 만에 지켰다. 내가 여기까지 그것도 외국인데도 운전해서 왔다!!!


온갖 생각과 감정이 떠올라 혼자 앉아 고래상어와 멋진 세 마리의 가오리가 지나다니는 걸 봤다. 압도적이다. 무섭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인간이란 무엇이고 관계는 무엇인가에 내로남불과 자기 객관화 등에 대해 틈틈이 생각하는데 결론이 나지 않는다.


아들이 갖고 싶어 한 옷도 사줬고 내가 갖고 싶던 향수도 샀다. 도전도 대성공이었고 가족, 지인들 선물도 챙겼다. 이번 여행은 약간의 힐링+ 일본어에 대한 욕구+뿌듯함+ 아들과의 추억으로 기억에 담겼다.


귀국하면 또다시 그 자리에서 관계나 인간에 대한 생각에 잠겨 들겠지. 요즘 카톡이든 전화든 SNS는 내게 짐 같고 보기 무섭기도 해서 잠시 문을 닫아두듯 그런 마음으로 거리를 둔다. 특히 댓글이 많이 달리는 곳은.

무서운 마음까지 드는 건 무슨..

소진에 따른 대가이겠지. 내가 에너지를 여기저기 남발해서.


괴테-융 책을 읽다가 그림자에 대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조만간 그림으로 그려봐야지.

기다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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