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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프 Feb 13. 2024

돈가스는 죄가 없다.



까슬까슬 바삭한 튀김옷 위로 걸쭉한 데미글라스 소스가 듬뿍 뿌려져 있다. 한 손에 포크 한 손에 나이프를 들고 중심부를 과감하게 갈랐다. 하얀 속살에 소스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큼직하게 잘라 입에 넣었다. 오늘 회사식당의 점심 메뉴는 돈가스다.



돈가스가 싫다. 그러나 돈가스는 죄가 없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사이가 소원해진지는 한 3년쯤 됐다. 뭐든지 적당한 게 중요하다는 세상의 진리를 무시한 채 시도 때도 없이 먹게 된 것이 원인이다.



아이 돌 전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우유와 이유식이 아이의 주식인 시절엔 우리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으면 됐다. 울고 보채서 문제였지 메뉴의 제약은 덜했다. (연기 자욱한 숯불고깃집은 그때도 피해야만 했다.) 아이가 조금씩 어른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돈가스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좋은 선택지였다. 몸에 좋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돈가스는 고기가 아니던가. 단백질 보충이라는 명분이 있는 메뉴였다. 게다가 입 짧은 우리 아이도 돈가스만큼은 잘 먹었다. (세상에 튀겨서 맛없을 음식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돈가스는 없는 곳이 없었다. 키즈카페, 아웃렛, 놀이공원, 쇼핑몰 아이와 갈만한 곳에는 어디서나 돈가스는 팔았다.


밥 할 기력이 없어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돈가스는 단골메뉴가 됐다. 배달음식이라는 게 아이가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필터를 씌우면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든다.


요즘엔 제품도 잘 나온다. 반찬 없는 날엔 냉동돈가스를 에어프라이어에 10분만 돌려주면 갓 튀긴 돈가스의 맛을 집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지난 3-4년간 우리의 외식 밥상 90%는 돈가스가 올랐다. 부모 노릇이라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긴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고충이다. 돈가스를 이렇게나 많이 먹게 된다는 얘긴 어디서도 못 들어봤단 말이다.


그리하여 이 자리를 빌려 내가 얘기해주려 한다.

예비부모님 여러분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돈가스만 먹는 날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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