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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퍼스트 May 12. 2021

육아휴직 동안 나를 키우는 법

육아(兒) 말고 육아(我) 휴직 #3





선배들의 휴직 공백을 백업하고, 육아휴직을 떠나는 동기들을 배웅하고, 후배들 마저 출산을 하러 떠났다. 빈자리를 메꾸고 기다리던 직장 생활 8년 차에 내게도 아기가 찾아왔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육아라는 두 글자는 희미하고 휴직이란 두 글자만 크게 보였다. 휴직자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회사를 떠나 있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기다리던 육아휴직의 기회가 나에게도 오자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궁금했던 건 이 두 가지였다.



1. 진짜 뭐 하나 배울 시간이 없을까?

2. 책 한 권 읽기도 어려울까?



겪어보니 육아휴직이 아이만 보기에도 벅차단 선배들이 이야기는 과장이 섞인 것으로 판명 났다.











아이를 낳고선 100일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이성적으로 사고도 어렵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쳤다.


아이의 수유 텀이 조금 늘어나고 나서야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휴직 내내 독서는 모두 전자책으로 했다. 아이 안기도 벅찬데 무거운 종이책까지 손에 쥐고 있기엔 손목에 미안한 일이었다.


낮잠을 자면서도 엄마가 없으면 귀신같이 깨던 아이였기에 옆에 함께 누워 핸드폰으로 조용히 전자책을 열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아기 띠를 하고서도 한 손엔 핸드폰을 쥐고 책을 읽었다. 종이책을 전자책으로만 바꿔도 휴직 기간에 독서할 수 있는 틈이 얼마든지 있다.



아기가 8개월쯤 되자 영어공부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정말 많은 원서 모임들이 존재했다. 나는 이때 온라인 스터디에 처음 눈을 떴다. 회사 생활만 하던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이었다.



 처음 시작한 것은 마틸다 원서 읽기 모임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성인소설도 아니었기에 쉽게 생각했는데 페이지를 펼치고 나니 모르는 단어가 속출하여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책 자체가 두껍지도 않을뿐더러 재생지 재질로 책이 되어 있다 보니 아기 띠를 하고 손에 들고 있어도 무리가 되지 않았다. 이 책 한 권을 완독하고 나니 아이를 보며 원서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나를 휘감았다.


바로 이어 4개월짜리 또 다른 원서 읽기 스터디를 신청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성인 소설은 아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 시리즈였다.  



성인 소설에 바로 도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붙들고 좌절감을 맛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괜히 어려운 책으로 시작하여 포기하는 것보다 쉬운 책을 완독하는 게 낫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도서는 마중물이 되어 'Wonder',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Front Desk'과 같은 영 어덜트 소설로 이어졌다.














나는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나는 엄마가 돼도 절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를 막상 낳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내 욕구보다 상위에 위치한 존재란 게 생길 거라곤 생각해 보질 못했다.



친정과 시댁 모두 지방에 위치한 내가 아이를 키워내려면 '퇴사 후 내 손' 혹은 '회사 다니며 남의 손', 이 두 가지 옵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소중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뉴스에는 왜 이리도 괴팍한 소식들이 자주 올라오는지. 남을 어찌 믿고 나보다 중요한 이 아이를 맡기나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퇴사를 진지하게 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 회사 말고는 그 어디서도 써먹을 수 없는 일. 퇴사하는 즉시 경쟁력이라곤 1도 없는 상태로 추락한다는 걸 깨달았다. 휴직 기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좋아하던 영어공부를 자격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온라인 테솔이었다.








"여보! 유진이 잠깐 좀 봐줘! 나 뭐 인증하고 와야 해!!"


"여보!! 나 이거 오늘 꼭 들어야 해!!"


"여보!!! 나 시험!!!"




온라인 테솔을 듣는 동안 무수히도 남편과 친정엄마를 찾았다. 그렇게 온라인 테솔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이 수업을 들으며 깨달은 것이 많다.



하나.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구나.


둘. 나는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구나.


셋.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구나.




 육아휴직 기간에 온라인 테솔 자격증은 얻었지만 내가 앞으로 먹고사는데 써먹을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온라인 테솔 수업을 들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휴직 전에 정말 쉽게 했던 생각이 '아.. 때려치우고 영어 과외나 할까..'였다. 퇴사 후 영어교육에 종사한다는 옵션은 더 이상 내게 없다. 게다가 이때 붙은 리스닝 근육 덕에 새로운 뭔가를 배울 때 유튜브에서 외국 영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로 써먹지 못할 자격증과 나의 성향 파악 그리고 리스닝 실력을 얻어다고 나 할까.











언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노션'을 알게 된 순간 말이다. 배워보고 싶단 생각에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한 권 샀고 맨땅에 헤딩하듯 몸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9년도 당시에는 지금처럼 노션 수업이 많지가 않았다. 혼자 눌러보며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배웠던 것인데 노션은 정말 신세계였다. 적성에도 맞았다. 사용하다 보니 잘한다 소리를 듣게 됐고 몇몇 분에게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제작해달란 의뢰까지 받아 부수입도 얻게 됐다. 클래스 요청도 있어 원데이 클래스도 몇 번 열어보는 경험도 갖게 됐다.




관심 있어 배워봤던 것이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할 줄 몰랐다. 이건 어떨까 저건 나와 맞을까 생각만 하기보단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게 됐다.












휴직 기간 동안 아이만 키우다 회사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살았다. 다양한 스터디 모임에 참여도 했고, 내가 직접 스터디도 기획하여 운영도 했다. 별것 아니지만 작은 자격증도 하나 땄으며 독서와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휴직 전과 비교해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난 제자리 그대로였다.




휴직을 한 달을 앞두고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짧은 은행원 생활을 하다가 로펌에서 숫자 만지는 일을 하는 내게 브랜딩과 마케팅은 생소한 분야였다. 살면서 마주할 일이 없는 단어였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브랜딩이 가능한가? 퍼스널 브랜딩이 도대체 뭐지?













복직 직전에 퍼스널 브랜딩 과정을 만났고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육아휴직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바로 목적지 없이 노를 저었다는 것이다. 막연히 아이만 보다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을 뿐 어떤 것을 달성하고 나올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고심 끝에 나는 '맘퍼스트'라는 부캐를 만들었다. 아이에게 엄마 먼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아이의 성장에만 에너지 쏟는 엄마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의미다. (Mom, First!)



퍼스널 브랜딩을 접하고 난 뒤, 콘텐츠 소비만 하던 삶에서 벗어나 콘텐츠 생산자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복직한지 1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영어 스터디, 북클럽, 노션, 캔바라는 키워드로 이것저것 부딪히며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후회 없을 만큼 알차게 보낸 육아휴직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 나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그래서 예비맘들에게 당부하노니, 육아휴직 전에 육아템과 수면 교육만 찾아보지 마시고 본인의 성장 계획을 꼭 세우고 들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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