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장인어른에게서 장인어른을 찾다
한시로 그린 자화상
1. 장인어른의 서(書)에 시(詩)로써 답하다.
執筆 집필
孤雲遠邦生 고운원방생
秋風吟客窓 추풍음객창
墨香發霞谷 묵향발하곡
擧話以自省 거화이자성
붓을 잡으매
외로운 구름이 먼 나라에서 피어나고
가을바람에 나그네의 쓸쓸함을 읊조리니
먹 내음이 노을 비낀 계곡에서 피어나
자기성찰로 화두를 삼으시네.
장인어른께서 서예전에 최치원(崔致遠)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을 출품하시어 입선되신 것을 감축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해보았습니다.
‘고운(孤雲)’은 최치원의 호이고, ‘하곡(霞谷)’은 장인어른의 호입니다.
2. 자부심
장인어른을 처음 뵌 건 결혼을 하겠노라고 지금의 아내와 함께 안양에 있는 외제트럭정비소를 찾아갔을 때입니다. 장인어른은 조카사위의 트럭정비소를 대리로 경영해주는 정비소 대표였습니다.
첫인상은 단호함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살 집을 얻어야할 게 아닌가? 집은 인천에다 얻어야 하네. 이건 절대적인 내 요구사항이니 그렇게 하게나.”
저는 신접살림집을 어디에 얻느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천에 얻든 다른 곳에 얻든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단호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보다 단호함 뒤에 풍기는 그 기품은 무엇이었을까요?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이유에 대해 대충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처가는 주말마다 장인장모님이 계신 집에서 가족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족모임이래야 손위처남과 막내처남은 장가를 안 간 때였으니, 둘째처남네 식구들과 우리식구들만 가면 되는 거였지요.
장모님의 음식 솜씨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장인어른과 둘째처남의 입맛은 일류요리사 뺨치는 프로수준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음식에 대해 자못 까탈스러운 데가 있으십니다. 그 까탈스러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보다 까탈스러움 안에 들어있는 그 기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처가에서의 가족모임은 장모님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나누는 자리였지만, 저는 장인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둘째처남과 술잔을 부딪히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장인어른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6진을 개척하고 여진족을 무찌르는 등 공을 세워 장군으로 불린, 절재 김종서 장군의 형인 묵재 김종한의 대를 잇는 종손집안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자부심이다.
절재 대감의 절의를 가풍으로 이어야 한다는 기개가 서려있었습니다.
3. 삼자대화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릴지라도 옳은 일을 따른다는 것과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먼저 도의에 맞는지를 생각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이(利)를 취하려는 마음가짐은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에서 나오고, 의(義)를 택하려는 마음가짐은 거듭난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딴죽을 걸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장인어른은 저의 딴죽을 잘도 받아주셨습니다.
변호사인 둘째처남과는 술친구이기도 하지만,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등에 걸쳐 안목과 식견을 나누는 말벗이기도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처남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장인어른께서 핵심을 짚어주시며 불꽃 튀는 삼자대화가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한 번은,
저 : 악(惡)이란, 남의 생명을 해치거나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말해요. 그런데, 선(善)을, 남의 생명을 구하거나 돕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장인어른 : 그럼 그게 아니면 선은 뭐를 선이라고 하는 거지?
저 : 선은 자기 삶을 누리는 그 자체를 선이라고 하자는 거지요.
장인어른 : 그럼 자기 삶을 누리기 위해 남의 생명을 해치거나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은 뭐라 하지?
저 : 자기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 먼저 가하다면 그건 선이고, 남의 생명을 해치거나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는 것은 필요악이라고 해야겠지요.
장인어른 : 그건 박수경이 생각이고.
또 한 번은,
둘째처남 : 이와 기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은 단순히 사상적인 차이가 아니었어요. 정치적인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이와 기를 다르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정파 간의 대립이 문제였어요.
저 : 저는 서경덕, 홍대용, 임성주, 박지원, 최한기 등으로 이어지는 기일원론이 마땅하다고 보지만, 이원론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도 많지요.
장인어른 : 그게 우리 일상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4. 장인어른 찾기
그렇게 수없이 많은 또 한 번이 있었습니다. 그 ‘또 한 번’들을 통해 저는 장인어른에게서 세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은 함석헌 선생님입니다. 장인어른은 소싯적 우수한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영양실조로 쓰러져 요양을 해야 했기에 대학진학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경야독을 하시던 중에, 유네스코에서 설립한 지역사회지도자양성 교육과정에 입학해 졸업하시고,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농장에서 2년을 함석헌 선생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랬던 겁니다. 역사를 꿰뚫는 씨알의 소리와 일상을 쟁기질하는 함석헌 선생님의 모습이 장인어른의 기품에서 찾아낸 첫 번째 분입니다.
또 다른 한 분이 신영복 선생님입니다. 아내는 제게 김광석이라는 사람과 그의 노래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제게 신영복 선생님이라는 사람과 그의 삶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인천에 강연을 오셨을 때 장인어른이 강연을 들으러 가셨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얼굴에 그렇게 은은한 미소를 띨 수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겁니다. 감옥이 대학이었다면서, 고전을 통해 세상을 통찰하고 그 통찰력으로 세상에 따뜻한 희망을 던져주신 신영복 선생님의 모습이 장인어른의 기품에서 찾아낸 두 번째 분입니다.
장인어른에게서 찾아낸 두 분은 학문도 학문이지만, 그 분들의 일상의 삶이 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고 깨어있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장인어른도 말씀하셨듯이, 그게 우리 일상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라는 문제의식입니다.
서책과 논리의 학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저에게, 신영복 선생님께서, 장인어른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 일상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데?”
5. 세 분이라면서?
장인어른에게서 마지막 남은 한 분을 더 찾아내 보겠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자신의 삶이 완전하다, 완벽하다 할 사람이 있겠는지요? 누구나 허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장인어른 또한 허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그 자신의 허물을 진심으로 돌이켜보신다는 겁니다.
“음, 이 대목은 내가 잘못한 거다.”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써 했던 ‘자기성찰’을 장인어른은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계셨던 겁니다.
이제 세 번째 그 분이 보이시나요? 바로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돌이켜보시는 장인어른 자신입니다. 저는, 윤동주의 <자화상>과 <쉽게 쓰여진 시>를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 속에, 우물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날을 외로움에 웅크리고, 그리움에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자신을 비로소 처음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 비로소 ‘거듭난 나’의 동거입니다. ‘나’가 거듭났으니 ‘나’는 ‘거듭난 나’로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온 나’는 뼛속 깊이 내면화된 나이고 ‘거듭난 나’는 아직 신생아 같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신생아의 모습을 가만 보면, 먹고 자고 싸고 잠시 놀아주는 체하는 것을 빼면, 내내 잠을 자는 게 일입니다. ‘거듭난 나’에게 영양도 공급해 주고 운동도 시켜주어, 깨어있도록 해야 하고, 이론과 실천의 근육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듭난 나’를 내면화하는 과정입니다.
“예수가 참 혁명가인 것은 그가 정치적 혁신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인격의 혁신, 혼의 혁명, 그의 말로 하면 거듭남(새로남)을 했기 때문이다.”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사, 1979년 5판, 32쪽.)
그랬던 겁니다. 장인어른 자신을 돌이켜보시는 거듭나신 장인어른이 제가 장인어른에게서 찾아낸 세 번째 분입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 분과 평생을 함께 해 오시는 중입니다. 저는 이제 몇 걸음마를 뗀 셈입니다. 그 걸음마를 실천(實踐)이라고 합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