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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우주에 내던져진 막막한 느낌

밥통성찰록

by 청와

恍忽侵攻 황홀침

尿急醒了開扇門 뇨급성료개선문

鼻前漆黑咫尺寞 비전칠흑지척막

或閉着眼眨仰天 혹폐착안잡앙천

星侵犯黢大地 낙성침범출대지

황홀한 침공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깨 여닫이 여니

코앞이 칠흑이라 지척이 막막하네.

눈을 감고 있나 깜짝거리다 하늘을 우러르니

쏟아지는 별들이 검은 대지를 침범하네.


眨 (눈을)깜작일 잡

대학 시절 영주 부석사 아래 과수원에 사는 친구 김모군네를 윤모군, 이모군과 함께 찾아갔다. 그날 밤 과수원 옆에 딸려있는 김모군네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산중턱이라 밤이 깊어지면 코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다. 한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잠이 덜 깬 상태로 여닫이를 열었다. 발을 내딛으려는데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눈앞이 캄캄했다. 그 막막함이라니.


그 때 문득 하늘을 우러렀는데, 별들이 ‘빽빽하다’는 것은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황홀함이라니. 빛에 포위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느낌이다.

暗室 암실

電燈熄㓕無光房 전등식멸무광방

瞑或睁瞬寞而暗 명혹정순막이암

困寢汝旁臥反側 곤침여방와반측

茫然熱感顺頰流 망연열감순협류


캄캄한 방

전등마저 꺼진 빛 하나 없는 방에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깜빡여 봐도 막막하고 암담하기만 하여

곤히 잠든 네 곁에 누워 잠 못 이루노라니

하염없이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흐르네.

그런데 그 경험을 수원에 사는 친구 최모군네 집에서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최모군네는 가세가 기울어 서울서 수원으로 방 두 개 딸린 월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최모군네 집에 가게 되었는데, 큰방은 최모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쓰고 있었고 작은 방에서 최모군과 내가 자게 되었다. 다른 데 둘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작은 방 한 쪽 벽에 장롱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장롱이 창문을 가리고 있었다. 최모군이야 학보사 일로 바빠서 잠만 자는 곳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었겠다. 장롱 옆에 딱 둘이 누울 만한 자리에 잠자리가 마련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최모군이 그만 자자고 하면서 백열등을 껐다.


불을 껐을 때의 그 느낌은 김모군네 집에서 느꼈던, 빛 한 줄기 어디서 새어 들어오지 않는 그 막막함이었는데, 밤하늘에 듬성듬성이라도 떠 있을 별빛마저 빼앗겨 버린 암담함 때문이었을까, 삶이 팍팍하고 고단해도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는 친구의 의연함 때문이었을까? 한참을 그렇게 암루를 흘려야 했다.


친구 최모군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가 막막하고 암담한, 그래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의 삶 속에서 그가 느꼈을, 황홀하게 빛났을 삶의 순간들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30여년이 지났다. 대학 시절의 그 막막함에 대한 경험은 그렇게 두 추억 속에 고이 담겨 있다가, 이번 여름휴가에 대학 동기 ‘애린’의 권유로 ‘뮤지엄 산’에 가족여행을 하면서 다시 소환되었다.

完全領域 완전영역

换鞋登階段 환혜등계단

窺步入光壁 규보입광벽

六方囚白色 육방수백색

投棄天地漠 투기천지막

완전한 영역

신을 갈아 신고 계단을 올라서

발걸음을 엿보며 빛으로 만든 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위아래 사방 온통 흰빛에 갇혔는데

우주공간에 내팽개쳐진 듯한 그 막막함이라니

제임스 터렐의 작품 ‘간츠펠트(Ganzfeld)’는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이라는 말이다. 강렬한 엘이디 빛이 상하 사방 모두 흰색으로 된 벽과 바닥과 천정을 비춘다. 한 발 들여놓는 순간 무한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다음 찰나에 온 그 막막한 느낌, 그것은 어둠에 갇힌 막막함이 아닌,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것 같은 광막함이었다. 어둠에 갇힌 막막함이 눈앞이 ‘캄캄해진 느낌’이라면,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것 같은 광막함은 눈앞이 ‘흼흼해진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전자의 막막함은 한자로 ‘寞寞’(막막)이라 할 수 있는 고립무원의 느낌이다. 후자의 막막함은 한자로 ‘廣漠’(광막)이라 할 수 있는 텅텅 빈 느낌이다.


눈앞이 깜깜한 고립무원의 느낌은 영주 김모군네서, 수원 최모군네서 느껴보았다. 텅텅 빈 느낌은 첫 경험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낯선 느낌이었다. 그 낯선 느낌 속에서 우주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텅텅 빈 나를 만났다.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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