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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와 Jun 12. 2024

뚫입이 막귀에게

밥통성찰록

瑞花 서화

靑蛙 朴秀慶 청와 박수경


瑞花滿地發 서화만지발

衆心東西彷 중심동서방

師曰胡亂行 사왈호란행

白雪蓋細說 백설개세설


상서로운 눈꽃


반가운 눈꽃은 도처에 피어나고

중생의 마음은 동분서주 헤매네

선사는 어지러이 다니지 말라셨는데

내뱉은 말들을 흰눈이 덮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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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西山大師 서산대사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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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이러니저러니 많은 말들을 해왔습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들 알아들어 주면 좋은데, 오히려 찰떡 같이 말해도 개떡 같이 알아듣기 십상입니다.


알아듣는 건 알아듣는 이의 몫이고, 말하는 이는 다음 세 가지를 지키라고, 유시민 작가의 지인이 유작가에게 일러주었다는 말입니다.


첫째, 그 말이 옳은 말인가?

둘째. 옳은 말이라 해도 그 말을 꼭 해야 하는가?

셋째, 꼭 해야할 옳은 말이라 해도 그 말을 친절하게 하는가?


첫 번째는 사실과 시비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당위와 필요의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방식과 태도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에 대해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시비를 걸라는 겁니다. 누구에게?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 먼저 시비를 걸라는 겁니다.


두 번째에 대해 부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방금 '필요'라고 했습니다. 당위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이에 비해 필요는 실효성과 유용성이라는 실용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저는 절대적인 당위라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필요한가? 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세 번째에 대해서는 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또 많은 말을 해버렸습니다.


시간과 망각이라는 흰 눈이 덮어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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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존경하는 선배님과의 소통을 부기합니다)

선배 : 유시민 작가의 지인의 말을 읽노라니, 가슴이 뜨끔_하네요.

청와 : 그 세 가지 <~그러한가?>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성인 군자의 경지인 듯 보이는데, 저는 샌님(꼰대)에 돌아이 기질까지 있어 놔서 언감생심입니다만, 그래도 그 경지 흘깃거리며 한 번 그 길로 가볼까는 하고 있습니다.

선배 : 둘째를 판단하는 게 제일 어렵네요 저는.

청와 : 열귀와 막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의 말을 받아들일 줄 아는 귀가 열린 귀, 열귀이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귀가 막힌 귀, 막귀겠지요. 그런데 남의 말을 들으면서도 결국은 자기 말만 하려고 드는 귀도 막귀의 고수라 할 수 있겠네요.

어떤 사람이 막귀인지 열귀인지는 겪어봐야 알 일이고, 자기 스스로 막귀가 아닌지 돌아 보면서, 열귀 만나 소통하고 교감하게 되기를 바래야겠다 싶습니다.

말로 안 되는 막귀에게는 몽둥이가 약일 때도 있겠는데, 말귀가 막힌 놈 성만 내게 만드는 꼴, 결국에 막귀 고치려드는 자기자신을 고치는 것이 빠르고 바른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기성찰에서 출발해서 뭔 짓을 하고, 다시 자기성찰로 돌아오기를 저는 저 자신에게 타일러 주곤 합니다.

그런데 저도 막귀인지라 제 말만 하려고 듭니다.~^^

선배 : 사전에는 말귀만 있는데,
열귀 막귀라… 기막히게 명사형을 새로 만들었네요(감탄).
말로만 들었으면 생소한 단어여서 못알아들었을 텐데 거듭 감탄

소통과 관련해서 뚫귀가 있…
요건 동일 방식이 힘드네요. 뚫린 귀는 귀걸이 하기 위해 뚫은 귀도 있어서.

흠… 그러고보니 소통의 주제는 이게 아니었죠?

청와 : 하하하 선배님의 의식의 흐름 화법이 너무 신선해요~ 저 같았으면 고쳐쓰기를 해서 읽는 사람이 알아볼 수 없게 했을 텐데, 마치 소녀처럼 순수하시면서 살짝 개구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뚫은 귀와 뚫린 귀 모두 뚫귀로 써도 무방할 듯 해요. 동일 조어 방식으로 무한 생성해 낼 수 있는 우리 말의 특성이지요. 동음이의어의 문제는 상황에 따라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봐요.

상대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열린 입과 이르고자 할 것이 있어도 어버이처럼 지수긋이 바라봐 주는 닫은 입도 때로는 필요하리라 봅니다. 저처럼 함부로 지껄여대는 뚫린 입도 있겠네요.^^

어떤 말을 꼭 해야할지, 어떤 것이든 상황이란 늘 기계적이지 않고 생동적이겠네요.

늘 섬세하게, 순수하게, 발랄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 : 뚫귀 = 뚫린 귀 뚫은 귀, 동의.

열귀와 열입이 만나 즐거운 대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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