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별과 또 하나의 꿈과 또 하나의 우주를 잉태해 낳는 것이다.
너나 나나 모두 다 불꽃처럼 살다가는 반짝이는 별이다.
2. 별 헤는 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밤하늘에는 숱하게 많은 이름들이 떠있습니다. 이미 왔다가 하늘로 돌아간 다 헬 수 없는 이름들, 이 땅 언덕 위에 내려와 반짝이는 수없이 많은 이름들, 이 땅 언덕 위의 이름들이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면 그 인연에 함께 할 이름들이 자기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며 다투어 반짝이고 있습니다.
저와 늘 함께 해준 별 하나가 밤하늘에 반짝이며 떠 있다가 방금 이 땅 언덕 위에 예쁘게 내려와 안겼습니다. 큰 딸아이 준화와 사위의 아름다운 인연이 별 하나를 불렀기에 ‘솔’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다른 별들이 어느 곳으로 2광년을 날아간 뒤...
3. 첫 포옹
오늘도 어김없이 8시 반 출근, 8시 퇴근이라는 '생업, 삶의 현장'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길에, 그날은 어린이날인데, 놀아주지도 못하고 준비한 선물도 없지만, 막걸리 두 병, 훼** 초콜릿 두 개를 사들고, 우리 아파트 7층 계단을 두 계단씩 걸어 올라, 약간 숨을 몰아 쉬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솔이가 콩콩콩 제게로 오는 겁니다.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솔이 외할머니인 아내는 자주 봐주러 가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가족 모임에서도 매번 보았으니 정이 담뿍 들었겠습니다. 저는 자주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외할아버지(저)는 아빠(제 사위)하고 외외증조할아버지(제 장인어른)하고 외외작은할아버지(제 작은 처남)하고 볼 때마다 술을 마시고 있으니' 정은 내려놓고 낯가림도 심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 솔이가 제게로 콩콩콩 걸어오는 겁니다.
솔이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제게 포옥 안겨서 그 고사리 손으로 제 어깨를 토닥토닥해줍니다. 한 동안을 솔이는 제 어깨를 토닥이고 저는 솔이 등을 쓰다듬으면서, 2년 6개월 만에 진하게 첫 포옹을 했습니다.
4. 실내공연
사위는 일 나갔다 늦는다고 딸아이와 솔이만 온 겁니다. 제가 육회를 맛있게 만들어 딸내미들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육회를 먹다가 둘째가 저를 째려봅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했냐는 겁니다. 비법은 없습니다. 저는 요리를 생각나는 대로 합니다. 대개 육회를 먹을 때 육회 옆에 배를 채 썰어 놓습니다. 한 번 이렇게 해 볼까? 하고 배를 강판에 갈아 넣었습니다. 다 그걸 맛있다 할 리는 없습니다. 비법은 없습니다. 있다면 딸내미들과 저의 정의투합(情意投合)이 있을 뿐입니다.
둘째 소담이가 과식을 했나 봅니다. 배가 더부룩하다며 건들건들거립니다.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던 솔이가 소파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일으켜 손을 끌며 발코니에 나가자, 이모한테 가자 잠투정 비슷한 심심풀이를 어떻게든 해보려던 차였는데, 큰 이모와 눈이 맞았지 뭡니까.
소담이가 즉흥 힙합 공연을 솔이 앞에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이가 자지러졌습니다.
5.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솔이만이 아니라 공연 내내 모두가 자지러졌습니다. 소담이의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뒤풀이는 저 혼자만의 막걸리 시간이었습니다.
顧今 고금
笑花萬發于居室 소화만발우거실
我視含笑酌一杯 아시함소작일배
回顧歷年是幸福 회고력년시행복
猶想念深何故乎 유상념심하고호
지금을 돌이켜 본다
아내와 아이들이 거실에서 웃음꽃을 피우는데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면서 한 잔 술을 마신다.
지난날 돌이켜보건대 이것이 행복일진대
오히려 상념이 깊어지는 것은 어인 일일는지...
몸의 피로회복제는 막걸리 한 잔이고, 마음의 술 한 잔은 아내와 아이들의 웃음꽃입니다. 그런데 막걸리잔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불투명한 이 느낌은 뭘까요?
6. 아버지에게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였습니다. 이러저러 불효막심한 일들이 많았기에, 입관할 때 그렇게 대성통곡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청개구리, 청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나.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몇 번인가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올 때, '할아버지~' 하면서 품에 안기는 것을 바라셨다고 하셨지요. 이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이러란다고 이러고 저러란다고 저러는 단순한 기계장치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한 모금이 목에 턱 걸리는 이 심정은, 아버지에 대한 송구함이 아닙니다. 그저 이로 인해 아버지가 떠올랐고, 주책없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 졌기 때문입니다.
7.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에 저는 결국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당신을 위해서 무엇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바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가족들의 안녕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뵐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응應 마땅히, 소주所住 머무는 바, 무無 없이, 이以 그렇게 함으로써, 기심其心 그 마음을, 생生 내라.
제가 어머니의 발뒤꿈치를 따를 수 있을는지 알 길 없습니다. 되든 아니 되든 그 길을 가고자 합니다.
너희들은 이미 잉태되어서부터 응애하고 옹알옹알 섬마섬마 따로따로 까르르하는 그때 이미 평생의 효도를 다 한 거다. 나를 위해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春雛 춘추
昨晝蛙醒蟄 작주와성칩
今陽雛遊庭 금양추유정
母鷄望高遠 모계망고원
汝等展才夢 여등전재몽
봄볕의 병아리에게
어제 낮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더니
오늘 볕에는 병아리들이 뜰에서 노니네
어미닭이야 높고 먼 곳을 바라겠지만
너희들은 끼와 꿈을 펼치거라.
8. 독자에게
한용운 선생님의 시집 <님의 침묵>의 발문 '독자에게'라는 제목을 빌어와서, 서두에 있는 '군말'의 첫 소절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 보려 합니다.
'님만 님이라'는 말에서는 유일적, 독선적, 배타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반해, '기룬 것은 다 님이라'는 말에서는, 너나 나나 모두 다 '같으면서 다른' 마찬가지(마치 한 가지)라는 깨달음을 일깨워 줍니다. 제가 즐겨 쓰는 '너나 나나 모두 다'라는 말에 그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별만 별이 아니고 너나 나나 모두 다 이 땅 위에서 빛나는 별입니다. 솔이별, 수진이별, 수경이별, 한결이별, 소담이별, 준화별...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별입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이 반짝입니다. 보석 같은 결실의 빛이 반짝이는 겁니다. 우리는 이들을 스타라고 부릅니다.
꿈을 간직한 사람들이 반짝입니다. 희망의 빛이 반짝이는 겁니다.
울고 웃는 사람들이 반짝입니다. 간절한 눈물과 환한 미소가 반짝이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반짝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빛이 반짝이는 겁니다.
수 만 광년을 쉬지 않고 달려와 제 눈에 들어온 밤하늘의 별빛과 제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나이는 같습니다. 별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나 제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모두 아득한 옛날로부터 모이고 흩어지면서 변화해온 한 형제들입니다.
밤하늘의 별은 물론이고,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은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반짝이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반짝이는, 다시 만나는 것이 기뻐서 반짝이는 형제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