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글을 읽다가 슬쩍 다음 생까지 넘보다
밥통성찰록
1. 돌아보면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와 축복이다. 헤쳐나갈 힘을 준 것은 신앙과 나의 적극적인 마음의 상태 즉 긍정 마인드가 버티게 해 준 것이다.>
대학 동기인 매경의 '돌아보면'이다. 이 말이 들어 있는 매경의 <아멜리아의 미술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나의 '돌아보면'은 다음과 같다.
<돌아보면 한 세월을 분노와 싸움 속에서 살았다. 그나마 버티고 여기까지 온 것은 그게 다 그대들 덕인데 즉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2. 이런 생각
매경은 미술 역사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찾아 읽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 보람을 글로 쓰고 있다. 매경의 글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졌다.’
참 바보 같은 생각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는 매경이 부럽다는 말이다. 뭔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뭔가를 내게서 더 바란다는 말이다. 무엇을?
첫째, 매경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청와라니까 내가 세상에 대해 제멋대로 마음대로 자유로운 것 같은가? 아니다.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속으로는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늘 곤두서 있다. 매경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인다. 그 자유로운 영혼이!
둘째, 매경의 기본이다. 직접 발로 찾아다닌다. 체험이랄 수도 있고, 실천이랄 수도 있다. 체험이라면 살아있는 생생한 느낌이라 할 수 있고, 실천이라면 꾸준히 지속하는 추진력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기본을 무시하고, 기본기를 닦으려 하지 않는다.
셋째, 그러면서도 나는 기본도 안 되는 영혼을 가지고 자꾸 무엇을 하고자 한다. 하고자 하는 것은 욕심을 앞세우는 거다. 그런데 매경은 '하루하루'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일 일을 몰라서 좋다. 그날 하루를 받고 시작하면 별 별 일들이 펼쳐진다.>
매경의 '돌아보면'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복음성가의 한 구절이다. 고2 때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나는 복음성가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복음성가 책을 펼쳐놓고 혼자서 기타 치면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부르곤 했다.
저 '하루하루' 속에 '기본'이 들어 있고,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자연스러움, 스스로 말미암아 저절로 절로 절로 되어가는 '자유'가 들어있는데, 나는 내일의 축복을 백일몽처럼 꾸고 있더란 말이다.
3. 저런 생각
이번 생에는 안 되겠다. 당연하다. 전생은 어리바리한 순둥이 수경이의 생이었다. 이번 생은 자기 내면에 웅크리고 앉아 세상을 향해 떠벌이고 있는 외롭고 상처 많은 청와의 생이다.
다시 거듭 나자. 그것이 다음 생이다.
고창에 있는 친구의 집
高談後記 고담후기
고창담론 후기
解決責曰欲蠢愚 해결책왈욕준우
헤겔(Hegel)은 어서 결단을 내리라고 꾸짖어 말씀하시고, 하고 싶어? 못해? 밥통!
仙人笑爲結繭登 선인소위결견등
신선은 웃음 지으며 말씀하시네, 고치를 틀고 우화등선하라고
各竝不錯與病藥 각병불착여병약
병 주고 약 주고, 다 맞는 말씀들인데
靑蛙重生海山乎 청와중생해산호
청와가 해산(산을 품은 바다)으로 거듭나려는가?
蠢 꾸물거릴 준
두 분 선배님을 모시고 고창 친구 집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한 분은 독일에서 헤겔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다. 解決은 Hegel의 음차로써 그 선배님을 가리키는 뜻, 나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의 중의적 표현이다.
다른 한 분은 서양철학과 동양학 모두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지금은 동양학에 심취해 계신다.
靑蛙는 지금 나의 호이고, 海山은 새로 쓰려고 지어놓았던 두 번째 호다. 다음 생이 내게 허락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