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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그러고, 브런치 스토리팀도 그러기에

밥통성찰록

by 청와

1. 채근


아내가 그런다.


"왜 요새 브런치 글 안 올려?"


브런치팀에서 알림을 보내왔다.


[글 발행안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문장을 쓰는 근육'이라는 요즘 들어 잘 쓰는 비유를 '씽긋' 하고 웃으며 "브런치 시스템 참 재미있군"이라는 탄사를 보낸다.


2. 브런치 브레이크 타임


이런저런 사유로 브런치스토리에 글 올리기를 쉬면서, 브런치팀이 대문에 올려주는 핫한 작가들의, 뜨는 글들을 읽어보았다.


개인의 감정과 일상을 드러내는 글들과 사실을 전달하는 글들에 대해서는, '그거야 그 개인의 감정과 일상, 사실이 그렇다니까' 끄덕끄덕하다가도, 개인의 생각과 세상이치를 논하는 글들에서는, '으응? 과연 그런가?' 하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했다.


글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거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거나, 세상을 논하는 것이다.


3. 내 글을 읽어보면


나는 내 감정이든, 어떤 사실이든, 그것을 통해 결국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논하고 싶었던 게다.


이치를 논하는 글에서는,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용어 하나하나의 개념들과 싸워야 한다.

개념은 규정되는 것이고, 문장은 규정된 개념들을 활용한 판단이다.

용어의 개념 규정 속에, 한 문장의 판단 속에 이미 그 용어와 문장을 쓴 사람의 논리(사고방식)가 들어 있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은 진리를 드러낸 결과물이 아니다.

다만 진리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진리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결과물일 따름이다.


4. 이 시점에서



나는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학생일 뿐이다.

하루의 생업을 마치고 귀가해서 애쓴 나에게 술 한 잔 따라주며, 그렇게 수경이와 청와는 또 하루살이의 삶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잘 살아내고 있었지 않은가.


글을 쓴다는 것, 글을 많이 쓰는 것, 그것이 과연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문신처럼 몸에 새기는 것이라고 내게 말하곤 한다. 몸에다 글을 쓰는 것이다. 내 몸이 원고지이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글은 언제,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가?

글은 쓰고 싶을 때 제 마음대로 쓰면 된다.

내 몸이 책이다. 내 몸에 쓰인 글들을 그저 옮겨 적을 수 있게 되면 된다.


그럼 저 위의 전제들은 뭔가? 그것이 내 몸에 글을 써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저 전제들을 바탕으로 남의 글을 보고, 내가 쓰는 글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기본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느적거리게 된다." 이소룡의 말이다. 기본을 제대로 닦지 않으면 무술이고, 글쓰기이고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글이란 자신에게는 정리의 수단이고, 남들과의 관계에서는 소통의 방법이다.

나는 아직 정리 단계의 글을 쓰는 과정이라, 개념 정의에서부터, 사태의 판단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쓰지 못한다. 아직 흐느적거리는 '하안 띠'다.


글쓰기에 있어 언제, 어떻게도 중요하겠다만, 더 중요한 것이 '왜'다. 이규보는 이 '왜'에 대해 시마(詩魔) 때문이라고 했다. 시를 쓰게 하는 마귀에 씌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글을 왜 쓰는가? 내 글을 내가 읽어보면, 내 글에는 감동이 없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도 약하다.

그저 나의 세상살이와 내면살이의 이치에 대한 치열한 삶의 기록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게 될지 나는 모른다.


이것이 청와다. 나는 아직 소통으로 난 길을 걸어보지 않았다. 젊어서는 그랬다.


"나 같은 싸움닭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재미있는 세상 아니겠어?"


지금은 이런다.


'수경아, 니가 어쩐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마는, 너 하나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 않겠냐?'


나를 바꿔나가는 것이 청개구리의 정신이다. 그것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것이 시퍼런 이십 대의 청와였다면, 내 몸 안에 쓰인 글들을 다시 꺼내 읽으며, 전면 개정판을 써보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 노회한 오십 대의 청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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