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의 판독 — 부서지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몸말 판독 제16장

by 청와

⧖ 몸말 판독 제16장
의(義)의 판독 — 부서지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1. 청와(靑蛙)의 개인사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이야기하겠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한학(漢學)을 하셨던 꼬장꼬장하신 할아버지로부터, 자주 두어 시간을 무릎 꿇고 앉아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그 좋은 말씀 지금 어느 하나 기억나지 않는 것을 누구의 문제인지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유지 ⧖(면서) 변형인 세대가 이어진다는 거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는 달리 약주를 좋아하셨다. 아버지도 약주를 하시면 나를 앉혀놓고 두어 시간 말씀을 하셨다.
1.4후퇴 때 피난 내려와 우여곡절 끝에 지금 어머니 살고계신 개봉동에 터 잡으시고, 16살 어린 나이부터 미군 하우스 보이로 시작해서 어린 가장의 삶을 살으셔야했던 것을, 향후 정치적 보수 편향이라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맞섰던 이 불초 자식, 그나마 돌아가시기 전에야 제 못난 생각을 돌이켜 보고, 아버지를 안아들였던 일, 아버지도 제 마음을 이제는 아시리라...

나만 몰랐던, 그 잔여가 지금 내 삶의 동력이었던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더랬다.

아버지 모신 포천에 어머니 모시고 다녀오면서 아버지께 진심으로 사죄하며, 그 고마움을 제 안에 모신 아버지께 여쭈었다.

삶이란, 그래서 죽음이란, 원 포인트의 사건일 수 없다.

삶과 죽음은 사건으로 매 순간 종료될 수 있어도, 그 사건과 관계된 모든 뭉치는 그 사건으로부터, 그 사건에 대한 판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 그 무수한 그물코의 출렁임을 어이 다 살바리요?

다만, 지금 여기 불효 자식, 기억해야할 아무런 일 없이 추억하는 날에, 몇 자 안 되는 글로써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추념하오니 흠향하오소서.

2. 장인 어른의 사회사

장인어른은, 16대조 할아버지, 우리가 김종서 장군이라고 알고 있는 절재 대감의 형인 묵재 김종한(墨齋 金宗漢, 장자)의 후손이시다. 그것도 장손으로서의 후손이시다.

장인 어른은 평시에 후손들에게 이익 앞에서는 반드시 의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셨다.

견리사의의 정신은, 김종서 대감의, 목숨을 버릴지언정 의를 취하라는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을 이으신 거다.

3. 침전과 전이 편향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의 삶은 당대를 사셨던 두 분의 연산의 결과였다.

나는 두 분으로부터 구조(내용)가 아닌, '반골 정신'의 생성이라는 값진 잔여(의도적으로 연산되지 않은 관계)를 물려받았다.

장인 어른은, 가문과 가족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함석헌 선생님과 함께 하셨던 씨알농장의 생활이 이 사회를 바라보시는 데 큰 바탕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판독된다.

장인 어른의 가문사(사회사)나 개인사도 대쪽 같은 '반골정신'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판독된다.

4. 처남이 빠진 독대

처남이 돌아가기 전(몸말판독 제1장), 처남과 장인어른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인 어른 댁에서 모임을 가지며, 남정네들의 거대판독, 즉 정치 얘기 철학 얘기를 거의 격론 수준까지 해왔었다.

이제 중재자 처남이 없다.

장인어른이 물으셨다.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단 건가, 자네는.”
잠깐 숨을 고른다.
“저는…
의(義)라는 게 절대적인 규범이라기보다,
어지러워진 걸 다시 바로잡으려는 작동이라고 봅니다.
의수(義手)나 의족(義足)처럼요.”
잠깐 정적이 흐른다.
“…그게 무슨 소린가.”
“본래의 기능을 잃은 걸,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거요.”

식탁 위에서 술잔이 몇 번 오갔다.
“대체로 어르신 세대까지는
종적인 규범을 강조하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장인어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우리 세대가 규범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장인어른, 제 생각은—”
“자네 목소리가 너무 커.”
(생각이 문제가 아니다.)
(나의 태도가 청와 1.0의 투쟁으로 판독되어서다.)
(몸말판독 프롤로그 참조)
(스무 살 시절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이 아직 식지 않아서다.)
말이 끊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세.”
“예…”

5. 딸의 판독을 수용하다

“아빠.”
집에 돌아와, 딸이 말한다.
“오늘 엄마 생신이잖아요.
왜 그러셨어요.”
나는 한참 대답을 못 했다.
“그래…
내 태도가 잘못됐다.”
손에 쥔 잔에 힘이 조금 들어간다.
“근데…
외할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야.”
잠깐 침묵.
“아빠 안에 있는 연산이…
좀 과하게 나온 거지.”
딸은 가만히 듣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말을 고른다.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계셨어.”
“흔들려요?”
“응.
정답은 없고 모든 게 과정이라고 늘 말씀하시면서도,
실제로는
그 ‘정답(살아오신 삶)’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붙잡고 계신 거야. 그걸 스스로 만(慢)이라고 하신 거야.”
식탁 위에 정적이 흐른다.
“아빠는…”
“…그걸 건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
“왜요?”
“모르겠다.”
짧게 웃는다.
“술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래 쌓인 잔여 때문일 수도 있고.”
잠깐 후,
“아까 말한 건…
틀린 말 아니에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틀렸다, 맞았다가 아니야.”
“그럼요?”
“규범적 의(義)가 틀렸다는 게 아니야…
내 연산은 그렇게 이루어졌다는 거야.”
딸이 나를 본다.
“아빠, 그럼 태도를 바꿀 수는 있어요?”
나는 잠깐 생각한다.
그리고 말한다.
“못 바꾼다.”
“네?”
“누구도 남을 뜯어고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뜯어고칠 수 없어.”
딸이 조용해진다.
“그럼요?”
“침전은 뜯어고치는 공사가 아니야.
계속 읽는 거지.”
“읽어요?”
“응.
자기를 끊임없이 재판독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거지.”

6. 끝나지 않는 연산

막내딸과 둘째딸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아내도 먼저 잠자리에 든다.
나는 한동안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다.

그날 밤,
장인어른은
담배를 태우시고 들어가셔서
창가에 잠깐 서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오만인 건가.)
(그러면… 바꿔야 되는 건가.)
(내가 살아온 게… 틀린 건가.)
연기만 천천히 올라간다.

나는
오늘 하루를 다시 연산하고 있었고,
딸은
제 방에서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자기 연산을 하고 있었을 테다.

아무도
아무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도
오늘 전과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의(義)는

자기 갱신적 연산,
자기 재판독의 과정

고 판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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