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 교향곡 제3악장, 눈물 없이 들을 수 있을까?
밥통성찰록
주고받는 게 세상살이다. 엄마 뱃속의 아이는 엄마로부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가져간다. 그래서 태아를 가장 이기적인 생명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태아는 받기만 하는 걸까?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실 때,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는 것도 없이 폐만 끼치니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동네 약국을 돌아 수면제를 잔뜩 사오신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거동도 못 하시는 상황에 이르셨다. 2년을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돌보셨다. 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폐끼치지 않고 가시기를 바랐다. 그것은 바람이었을 뿐, 척추관 협착증까지 와서 돌봄을 받으셔야 할 어머니께서는 고집스레 당신이 직접 아버지를 돌보셨다. 아버지는 폐만 끼치신 건가?
엄마 아빠는 그 아가의 꼼지락거림에서 무한한 기쁨을 받는다. 자식들은 그 아버지께서 그저 살아만 계셔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가가 태어나서 건강히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내게 크나큰 기쁨을 주겠기에 지금 기쁜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기적처럼 소생하시어 돈도 버시고 아버지 역할을 해주시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느낄 때 자기가 사라지면서 대상과 하나가 되는 거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기가 열리는 거다. ‘나’라는 마음에 문이 열리고 사랑하는 대상을 안으면 하나가 되는 거다. 물론 서로의 마음에 문이 열려야 완전한 하나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남의 문이 열리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문부터 열어보자. 그것이 남의 문이 열리게 하는 길일 수 있다.
모든 대상에게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무한한 포용성이다. 자기가 완전히 물러터져 사라져버린 무아의 경지이다. 이런 바보 또 없다.
바라는 바 없이 세상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쓰일 수 있으려는가? 바라는 바 없이 베풀 수 있으려나? 우리의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그것을 거룩한 고스톱이라 감히 이름 붙여 본다.
결국은...
無我慈 무아자
에골리스 러브(Egoless love)
未問聽吾請 미문청오청
묻지도 않고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獻身無所願 헌신무소원
바라는 것 없이 헌신하셨습니다.
與諸毫不吝 여제호불인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母愛無我慈 모애무아자
어머니의 사랑은 바보사랑입니다.
無我慈(무아자)를, 제목은 영어로 ‘에골리스 러브(Egoless love)’라 했고, 본문은 완전히 의역을 해서 ‘바보사랑’이라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해서 술 한 잔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