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취(興趣),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밥통성찰록
1. 윤심덕과 김정호의 <사의 찬미>
윤심덕은 1926년, '幸福찾는 人生들아 너 찾는 것 허무'라는 노랫말을 지어 불렀다. 그의 연인 김우진이 지은 것이든 아니든.
김정호는 1987년 컴필레이션 엘피 판으로,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라고 노랫말을 바꿔 불렀다.
윤심덕 버전이 이치에 무게가 실렸다면, 김정호 버전은 감성에 중심이 놓여있다.
어느 것이든 사(死)를 찬미했는데, 염세주의가 되었거나 감상주의적이거나, 그 이면, 배면에 뭐가 있겠는가?
삶이다.
2. 춘흥
언 땅이 녹고, 개울물이 흐르고,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버드나무 가지 위에 물이 오르니 봄이 왔다고 한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봄의 흥취가 무르익었다.
예전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더랬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였다. 인사동 찻집 아담한 뜰에 조그만 연못이 있고 연못에는 금붕어 몇 마리 헤엄치고 연못가에 자목련 한 그루가 있었다. 여자친구가 내게 그런다.
“목련은 한창 피어있을 때는 화사하고 예쁜데, 뚝뚝 떨어지고 나면 지저분해요.”
밥통 같은 그놈이 그 말을 참 본새 없이 받는다.
“꽃이 예쁘고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그걸 보는 마음이 예쁘고 지저분한 거예요.”
나, 밥통 맞다. 말해놓고 보니 밥통 같은 소리를 했더군.
꽃을 보는 나와 상관없이 피었다 지는 것이 꽃의 흥취이다. 꽃을 피우려 애는 쓰건만, 핀 꽃이 천년만년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 본 바 없고, 시들고 뚝 떨어진 꽃이 그를 원통히 여겨 불평을 품고 세상에 앙갚음을 하려 드는 일 생각하기 어렵다.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었다 지는 것이 싱그러운 봄날의 춘흥(春興)이겠다.
3. 취흥
산도 들도 물도 새도 지천으로 흥에 겨웠다가도 흩어지고 헤어져 어디론가 돌아가는 것을 마다하는 것 본 적 없다.
그 길목에 이런 풍경도 있다. 호랑이가 새끼사슴을 노리고 달려든다. 우악스럽게 목을 물어 단 번에 숨통을 끊어 놓는다. 호랑이가 식사에 도취해 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어미 사슴은 어찌하냐고? 물에 비친 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어미 사슴은 새끼를 가슴에 묻었으니 그만 물에 풍덩 빠져 죽어야 하나?
동료 직원의 아들이 군입대를 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사고 뒤 한 달가량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하는가? 그 속이야 어찌하겠는가마는 그의 표정에는 웃음이 돌아왔고 농담도 주고받게 되었다.
작열하는 햇볕과 나무의 부대낌으로 활활 산불이 났다. 토끼고 다람쥐고 꿩이고 이리 뛰고 저리 날며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시커먼 잿더미 위로 비가 내린다. 그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노루의 눈에 눈물이 흐를까?
어느새 어디서 풀씨 날아들어 싹 틔우고 생명이 쑥쑥 자라난다. 토끼고 다람쥐고 꿩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며 날고뛰고 하는 것이 도도한 여름날의 취흥(醉興)이겠다.
4. 추흥과 유흥
달 희고 눈 희고 천지가 온통 하얀 세상에도 드러나지 않은 속에 그윽하게 매화향기 풍기겠지. 밝고 기쁜 것만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어둡고 쓸쓸한 것도 또한 삶이겠다. 쓸쓸한 가을날의 추흥(秋興)과 고즈넉하고 그윽한 겨울날의 유흥(幽興)이 또한 자연의 흥취겠다.
혹독한 눈보라에 맞서기도 하겠지. 때로 그 눈보라에 묻힐지라도 숨 놓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의지이고 그 의지의 발현이 흥이겠지. 맹수의 공격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지라도 그로 인해 삶이 다하면 한껏 살다 간 것이겠고, 다행스레 삶이 이어질 때 맹수에게 한쪽 죽지 내어주었을지라도 삶 다할 때까지 그 몸 이끌고 생명의 의지를 발현해 가는 것이 또한 흥이 아니겠냐는 거다.
5. 생의(生意)
싱그러운 춘흥(春興)과 도도한 취흥(醉興)과 쓸쓸한 추흥(秋興)에 고즈넉한 유흥(幽興)이 모두 자연의 흥취랄 수 있겠다.
뭇 생명(衆生)의 의지가 저절로 꼴려서 일어나 세상과 더불어 그것에 홀려서 사는 것을 흥(興) 또는 흥취(興趣)라고 하자. 그 흥취가 뭇 생명의 알움다움이겠다. 그렇게 한 세상 흥(興)얼거리며 잘 놀다 가면 좋지. 저절로 흘러가는 것, 그게 흥 아니겠는가? 속으로 한을 품고도 또 겉으로는 한 세상 흥타령하면서 지내는 어떤 이도 있지 않겠는가?
어디 흥만 흥이라 하겠는가? 흐르는 세월 따라 함께 흐르며 삶을 누리는 심정이 모두 흥 아니겠는가?
6. 사족
김현식은 술을 마셔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으로도 녹음을 했다고 한다.
나는 잘못 배운 술로 한 세월을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그 허접하고 안쓰러운 내 청춘의 격정적인 취흥은 윤심덕의 '허무'도 아니고 김정호의 '염세'도 아니다.
옳건 그르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이 나의 길, My Way다.
그것이 나의 앓음다운, 나의 취흥(醉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