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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Jul 10. 2020

부모가 된 뒤 생각하는 나의 부모

글이 늦어지는 이유

아이를 낳고 나서 처음엔 엄마에게 너무 감사했다.

'아이를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출산의 고통과 마음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는 신생아 시절을 거치는 동안 나는 늘 동생과 주변 친구들에게 "엄마한테 잘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연을 끊은 아빠도 이해가 되었다.

'가장으로서 부담감이 정말 컸겠구나'


하지만 아이를 키울수록 내 어릴 적 기억들이 생생하게 돌아왔다. 대부분 '어떻게 이렇게 연약하기 그지 없는 자식한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기억들 뿐이었다.  


물론 좋았던 기억들도 있다.


터널을 좋아했던 나를 위해 아빠가 몇 번이고 유턴을 해가며 터널을 지나갔던 기억,

베란다에서 잼 발린 식빵을 먹으며 엄마와 숙제를 했던 기억.


좋은 기억은 그 별 거 아닌 두 개뿐이었다.


어떤 상담자 분께서 강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음에 따뜻한 불씨 같은 기억 하나만 있으면 그 사람은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두 개의 기억은 나에게 삶을 견뎌낼 힘이 아닌 죄책감만 준다.


몇십 개의 안 좋은 기억들로 인해 양친 모두와 연락을 끊은 나는 그 두 개의 기억 때문에 부모를 미워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마지막 글을 올린 지 3주가 되어간다. 그 3주 동안 나의 부모에 대한 글을 쥐고 있었다.


부모와의 기억들은 매끈하지 않게 깨진 유리조각 같아서 꺼낼 때 한 번 다시 집어넣을 때 한 번 마음에 상처가 났다. 지금도 글쓴이의 서랍에 있는 초고엔 그 유리조각들이 널려있는데, 어떻게 잘 아귀를 짜 맞추어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내 아픈 기억들을 통해서


천륜은 사실 '부모는 자식을 워야만 하고 자식은 부모를 돌보아야만 한다'는 차갑고 폭력적인 계약에 불과하다는 것, 이제는 천륜이나 도리보다 '관계'의 관점에서 부모 됨과 자식 됨을 논해야 한다이야기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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