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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Sep 12. 2020

주말 아침이 순삭되는 과정

8시에 온 가족이 기상을 했다.


30분 동안 딸아이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선 아이의 아침을 준비했다.


주말 동안 너무 먹어 다이어트가 도루묵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 주말 하루 종일 부엌데기 노릇을 하다가 현타가 왔던지라, 이번 주말 어른을 위한 주방은 파업을 선언한 상태였다.


남편이 아이의 밥을 먹이는 사이 나는 폴더매트를 다 들어내고 대청소를 시작해본다.

얼른 청소를 끝내놓고 평일 내내 남편의 늦은 퇴근으로 쓰지 못했던 글도 쓰고 밀린 인터넷 강의도 들을 요량으로 있는 힘껏 서둘러 본다. 청소가 끝난 뒤 개운한 마음으로 걸레를 욕실에 던져놓고 뒤돌아 나오려는 찰나, 욕실 거울의 물자국이 내 멱살을 계속 잡아 당긴다.


'에이씨'


결국 스펀지를 들어 욕실 거울을 닦다가 세면대가 눈에 들어와 세면대를 닦다가 온 욕실을 다 닦아버리고 말았다. 이미 옷이 물에 젖어버린 김에 주저앉아 이따가 빨려던 걸레도 박박 빨았다.


숨을 돌리고 나오니 남편이 "배고프지 않아?"라며 세상 처량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 이번 주말에 다이어트 하기로 했잖아."

"그치..."


'하...'

평일 내내 kf94를 끼고 사무실에서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것이 마음에 걸려 이내 다시 주걱을 집어 김치볶음밥을 만들다. 앉아서 같이 먹고 있는데 아이가 날 찾는다. 아이와 잠깐 노는 사이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다.


(모든 남자들이 그런건 아니겠지만) 내 남편은 설거지를 시키면 정말 딱 설거지만 해 놓는다. 아마 미혼들은 도대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닥치게 되면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빡치는 일인지.


주방으로 돌아와서 사태를 파악하고는 잔소리를 하려다가, 서로 기분만 상하고 아이만 눈치보게 할 것 같아 참을 인자를 미간에 새겨넣고 설거지 마무리를 시작했다. 마무리를 하 행주를 쥐었는데 가스레인지며 벽이며 기름 자국이 나를 약올린. 그 길로 주방을 다 닦고 행주를 빨고 하길 몇 번, 이제는 정말 온 집안이 깨끗해졌다 싶어 커피를 한 잔 내리 시계를 보니 11시 25분이었다.


하...이제 30분 후면 아이의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다.


30분 동안 가볍게 이 과정을 글로 쓰면 재밌겠다 싶어 핸드폰을 쥐고 글을 쓰는데 띵동띵동 벨이 울린다. 창문 잠금장치가 고장나서 AS 신청을 한 것이 있었는데 수리 업체가 방문한 것이다. 이래저래 5분 빼앗기고 돌아와서 핸드폰을 보니 급한 마음에 뭘 잘못 눌렀는지 글이 날아가 있었다.


얼마 안 썼던 지라 별 궁시렁댐도 없이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뽀로로의 '루피' 피규어를 찾아 분주하다. 아이는 빨리 찾아달라며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남편은 부산스럽게 레고를 뒤적이며 '루피'를 찾아댄다. 결국 일어나서 30초 만에 찾아주고 와서 앉아 글을 쓰는 것이다.


12시다.


아이 점심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이고 나면 또 무어든 할 일이 보일까 싶어 무섭기만 하다.  

남편이 저녁까지 배고프다는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다.


부디 시간이 허락돼서 하려 했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기를.


※ 남편도 나 하고 싶은거 하라고 주말마다 혼자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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