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산다

최정진 시인의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by 시적

출처

1. 다음 카페, 푸른 시인의 방, 최정진의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감상 /주민현, (https://cafe.daum.net/poemory/H5qF/5060)


퇴근 시간에 만원 버스를 타서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찐빵이 되어 집에 온 적이 내게는 많았다. '버스'라는 소재는 일상적이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난 최정진 시인의 시집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같다>를 시립도서관에서 빌렸지만 시집을 열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 <웹진 시인광장>에서 '최석진'을 검색했지만 시가 안 나왔고, 다음 카페 <푸른 시의 방>에서는 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시 본문에서 내가 읽고 싶어 했지만 읽지 못한 그 시집 제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기에 그 시가 5줄이란 것은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기에 이 시를 골랐다.


난 시가 총 5줄이라서 본문부터 파악하던 습관을 벗어던지고, 제목부터 호기롭게 파악해 보려고 애썼다.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을 읽으면 화자가 어떤 사람을 불렀고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는 얼굴 이미지가 떠올랐다.


보통 '사람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를 부른다'는 순서가 일반적이다. 이렇게 도치시킨 이유는 이런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함 같았다. 화자가 내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그리고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정말 맞는 것인지 찾아내기 위해 살펴보는 얼굴인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착각이며 오해인 상황을 시의 제목에서부터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1연부터 의미심장하다.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라니. 무슨 탐정 수사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 어쩐지 비장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같다'라고 한 것 보아 추측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아주 적은 가능성으로도 많은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화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골몰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이어서 2연에 나온다. 화자는 버스 안에서 실제로 마주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자의 머릿속을 장악한 것은 '마주치지 않은 사람'이자 '화자가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보통 내가 모르는 것보다 아는 사실에 더 집중한다. 본능적으로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지만, 이게 꼭 당연한 것인가 시인은 화두를 던진다.


3연을 보면 '그를 보는 것이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외면하는 것이 선행도 악행도 아니다'라고 한다. 난 이 문장을 보며 모호하면서 어려운 법적 판결문이 떠올랐다. 이 문장을 통해 든 생각은 '그를 보는 것' 낯선 타인을 뚫어져라 쳐다본 것이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닌, 길 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생태 현상'이란 듯 내게 들렸다.


그리고 '외면하는 것'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외면한 것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란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세상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어있고 그것을 착각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로 난 읽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문득 내가 지난날 '뚫어져라 쳐다본 사람'과 '알지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지난날의 죄를 면죄받은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4연에서 '환멸은 차갑고 냉소가 따뜻해서도 아닌데'라고 한다. '냉소'라는 단어에 찰 냉이 들어가서 뭔가 '환멸'보다 더 차가울 것 같은 기분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상 둘 다 차가운 단어지만 상황에 따라 꼭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님을 표현하고 있다. '환멸'은 꿈이나 기대가 깨어지는 것이고, '냉소'는 무관심하거나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이다. 이것들을 좋게 해석하자면 '적절한 거리두기'란 문구가 떠올랐다.


사실 이 시는 2020년 2월에 발표된 시로, 주민현 시인의 시 감상에서 '마스크'란 키워드가 있다. 2019년 11월 코로나란 감염병이 터지면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단어를 배웠다. 꼭 그런 시대적 배경이 없더라도 사람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는 필수적인 상황이란 점에서 난 이 시가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연인 5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내렸다 돌아보면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타는 것 같다'라고 한다. '내리다'와 '탄다'라는 대조적인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 '버스'다. 이 문장을 통해서 순환적인 구조인 원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내가 받은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화자가 처음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고민하다가, 중간에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상관없다고 했고, 마지막에 다시 저 사람이 아는 사람인 것 같다고 앞의 말을 번복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화자가 떠올렸던 아는 사람'이 아니라 '화자의 곁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르는 불특정 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주민현 시인이 "대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동일한 안전수칙을 공유하고 아침마다 비슷한 신문기사를 확인하며, 서로를 조금씩 경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합니다."라고 내 장황한 생각을 멋지게 축약해 줬다.


나는 시를 다 읽고, 시의 제목으로 다시 찾아갔다.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을 보며 어쩌면 능동적인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고 번뇌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행동하고 자신이 아는지 확인하는 '고생하는 중생'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버스가, 불교적 용어인 '윤회'란 말과 잘 어울리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연에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마스크를 써서 눈 코 입의 윤곽을 확인하기 어렵고, 어렴풋하게 전체적인 인상으로 상대를 특정하기 때문에 상대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마지막 연에 '(중략)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타는 것 같다'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이 코로나란 전염병 이름 하나로 절로 생겨난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 없더라도 우리는 흔히 아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은 여러 가지 생각을 내게 떠올릴 수 있게 해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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