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어느덧 봄을 치닫고 여름으로 접어든다
아직은 저녁나절이면 쌀쌀하다 이럴 때 봄비 한 번이면 우리의 퇴근 발길은 종종 대고
쓸쓸한 바람은 온갖 기교로 여우짓 떨며 옷깃으로 파고들고
하루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꾹꾹 마음속에 눌러 담고 바쁜 일상의 헛헛함을 풀어내기 위해 지칠 대로 지친 내 그림자 질질 끌고 결국 뜨거운 국물 앞으로 이내 끌어당겨 앉혀 놓고야 만다
이제 우리는 음식을 그저 연명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시대별 음식의 변천사로 그 시대의 경제적인 측면
생활의 흐름 등을 유추해 낼 수도 있게 되었고
그런 시대적 배경엔 우리에게 아픔의 역사로 기록된
전쟁의 시기도 있었다
그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북 음식들의 많은
음식들의 명맥이 끊겼다
어찌 보면 이북의 음식도 한식이 아닌가 말이다
공들여 만들어졌던 가정식이며 이북의 절기음식들 지금은
그저 평양냉면 평양 만두 온반 정도가 많이 알려진 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온전히 이북지방의 음식 그대로라고 내어놓기에 근본적 자료도 미비하고 구전으로 내려온 음식들이라 원형을 보기가 참 어려워졌다
전쟁 이전 이북의 음식과 전쟁 이후의 북한음식 은
분명히 식재료 수급관계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너무도 다른 음식 들로 변형이 되어가고 있다
필자에게 오래전 일본에서 지인이 어떤 분과 함께 와서
식해를 일본 식품회사랑 공동 연구하여 상품화해보자는 의뢰가 들어왔었다
이제 옛날 함경도식의 여러 가지 생선류 식해를 만들어주실 어르신들께서 많이 돌아가셔서
물어물어 찾아오셨다며 함께 일본에서 작업할 것을 제안하였었다
일본에서는 식해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생선을 오래 두고 낮은 염도로 상하지 않게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미래 식량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가자미식해나 명태 식해와 함께 함경도에는
겨울 별미가 또 하나 있다
설명을 하자니 슬쩍 군침이 돈다
어릴 때는 썩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커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이 음식의 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를 사로잡은 그 음식은 바로 가릿국이다 제가
운영하던 이북 가정식 한식당 수작 반상에 겨울을 알리는 시그니처 메뉴 이기도한 함경도식 가릿국 가리는 갈비의 함경도 방언이다 이름뿐 아니라 먹는 방법도 특별한데
먼저 탕반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삶은 두부 위에 육회 한점 을 가벼운 술 한잔과 마신다
그리고 갈비와 수육 고기를 매운 소스에 찍어먹고
선지와 우거지 국물로 소주를 마신다
그러고는 밥을 한 공기 넣고 두부를 으깨어 다진 양념과
비벼 비빔밥으로 마무리한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국물로 깊숙이 상처 받은 마음을 녹여내고 국밥 한술로 허전한 속을 달래고 나면 내일 또 살아갈 힘을 얻고는 하던 함경도식 갈비 국밥 가릿국
대가족이었던 우리 가족을 위해 할머니께서 봄가을로 기력 보충으로 제일 먼저 하던 음식ᆢ
어릴 때부터 맛봐왔던 기억으로 내 영혼의 음식을
어느덧 사람들에게 맛 보이며 힘든 마음을 치유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들은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채 살아가다 문득
떠오르는 음식들이 한두 가지쯤 있다
불현듯 그 음식을 떠올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참을 수없이 생각난다
그래서 잃어버린 음식의 기억들로 그리워하던 할아버님
이 ᆢ 잊고 있던 소중한 친구들이 떠오른다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시간들 속에서 찾아낸
눈물 나게 그립던 음식들 ᆢ그로 인해 혹은 힘들었던 일들을 찾아내어 아름다웠던 기억은 한 번 더 기억하고
힘들었던 기억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듯이
맛있는 음식으로 치유해주면 어떨까?
예전에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소년원 같은 곳에서
미용기술 선생님을 한 1년 한적 있었다
그때 범죄를 저질러 수용된 어린 친구들 사회복귀 프로그램 직업상담을 해주면서 아이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던 중 아이들에게 뜻밖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이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것은 사실 돈도 옷도 아니었다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거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따뜻한 한 끼의 식사가
그리웠다고 토로하였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식구끼리 나누는 그한끼의 식사시간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거란 생각은 잘 안 하고 사는 듯하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시간들이 가족들과 함께했던 식사로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다
어떤 영화도 드라마도 음식 먹는 장면이 꼭 나오고 현실에서도 우리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남으로 연결되거나 중요한 행사 여행 모든 일상 다반사에
먹는 일로 시작한다는 것만 봐도 결코 먹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하루에 한 끼는 엄마의 체온과 손길이 담긴 따뜻한 화식으로 일상에 지친 가족들에게 불의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맛이 있어도 없어도 좋다
그저 그거면 된다
바쁘다는 말도 핑계로 쓰지 말자
주부들도 많이 하지 않아도 가족들도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
나의 작은 움직거림 이면 내 아이의 미래가 내 남편의
위축된 어깨가 활짝 펴진다
그런 큰일이 나의 작은 주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느 도시의 호텔에서 누군가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아름답고 화려하게 뽐내던 음식들 ~~ 손도 안 댄 음식들이 남겨지면 직원들도 맛볼 수 없는 규정 탓에 그대로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다 그이면에 그 도시 어느 곳엔 방치된 채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부모에게 방임되어 있는 결식아동들도 있다
식당을 하는 나에겐 이런 두 갈래의 문제점이 항상 딜레마이다
상하 불균형이 맞지 않는 우리네 인생의 식생활
음식으로 연결되는 세상사에 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기록하는 음식들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길이기에 ᆢ
나 또한 잃어버린 한 끼를 통해 추억을 소환해 내는
음식들을 꺼내먹고 있으니 사람들의 잃어버린 음식들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봄ㆍ가을이면 필자가 운영하는 한식당 수작 반상에서 기억의 음식인 함경도식 가릿국을 꺼내 드는 이유도 그러하다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어릴 적 음식들을
함께 나누고 음식으로 소통하고 싶은 나의 그런 마음
가릿국은 나의 할머님 냄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나의 잃어버린 한 끼다
할머니께서 해주실 순 없지만 온전히 내가 먹어봤던
혀의 기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 ᆢ
나의 뿌리 이북의 한식을 기억하고 지켜내어 언제나
우리 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북의 풍요로웠던
시절의 귀한 음식 맛을 전하고 싶다
귀하게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렿게 맛있는 그 기억으로 늙은 요리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우리의 한식사랑 은 우리의 추억이며 기억이며 미래이다
밥으로 소통하는 요리사 박소진 by 밥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