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꿉한 장마가 시작되기 전 여름이불 홑청 뜯어
빨아 마당에 훌훌 널어 바싹 말리고
삼베 이불 풀 먹여 바스락하게 말려 척척 접어
꾹꾹 밟아 엄마랑 할머니가 한 맺히신 거 다 풀어내듯 다듬이 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후들후들 하게 만든
삼베 이불과 가슬가슬 기분 좋은 홑이불로
긴장마를 대비하는 시작을 알린다
빨래 ~ 하니까
뮤지컬 빨래가 생각나네 ᆢ
솔롱고 ~ 나영이와 지금은 어딘가에 잘 정착해서 살고 있겠지
어릴 적 장마는 이상 시럽 게도 길었다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리
느껴지는 건지 ᆢ
갑자기 비가 후드득후드득 퍼붓고 세상 까매졌다가
해가 쨍쨍한대도 여우비가 주룩주룩 ᆢ
한참 엄마 따라 마당에 빨래 거두고
어느 해 여름은 내게 혹독하고 아팠던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짧지만 어린 나에게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설렘을 ᆢ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동아리 특별활동으로 RCY를 했었다
방과 후에 응급구조사 자격증 준비로 청소년 적십자 회관을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당시 고3이었던
오빠들과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그 회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한 끼 식사로 라면을 먹게 해 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신입생인 우리에게 당번이 주어지곤 했더랬다
라면이라는 걸 처음 끓여보는 내가 그것도 네 명이 50인 분을 끓여내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리자라는
는 분들도 참 무지했었던 것 같다
자기들 해야 할 일을 책임자도 없이 큰솥에
그것도 물이 펄펄 끓는 주방에
어린 소녀들이 뭘 할 줄 안다고 위험한 주방에
관리자도 없이 넣어두고 자기들은 모여서 커피랑 다과를 즐기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덕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았다
허긴 그때는 학생들 있어도 사무실에 서도 식당에서 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니 말이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될 일이고 뭇매를 맞을 일이지만 ᆢ
지금 생각해보니 뭐 그땐 그랬지
이렇게 쓰고 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네 ᆢ
예전엔 비행기 기차 버스 안기리고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하고 이야기해주면 우리 딸이 말도
안된다고 펄쩍 ᆢ
어쩌면 그 재떨이들과 함께 아버지와 혹은 남자들의
귄위적임도 함께 조금은 사라진 듯하기도 해서 왠지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다시 그 식당으로 돌아가서 ᆢ
거기서 가끔 함께 당번이 되었던 그 오빠와 나는
오빠는 고1 나는 중1이었는데
여름방학이 되면 면목동 에 있던
동서울 롤라장이었던가 ᆢ슬프게도 기억이 가물가물
가기로 하고 상계동 미도파 백화점에서 홍콩 라면을 먹기도 했었다
당시 백화점 음식점은 호텔 식당과도 같은 급이어서
전날 밤 몹시도 설레고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었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와 호텔이며 레스토랑 들을 많이 다녀 봤는데 ᆢ다른 남자랑은 처음이어서
그랫었던것 같다
중식 레스토랑이었었던 것 같은데 ᆢ
사각사각 씹히는 숙주와 숨 죽지 않고 살아있는 채소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혀가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꽃보다 남자의 F4처럼 항상 키 큰 오빠 넷이 몰려다니던 오빠는 다른 친구들을 떼어놓느라 진땀을
빼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 몹시 애썼던 ᆢ
그때도 지금도 연애젬병인 나는 그 홍콩 라면에만 꽂혀서 ᆢ온신경을 라면에 쏟고 있었다
그때는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서울에서 오빠를 잃어버렸다가는 큰일이라 다리 아픈데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못 하고 롤라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거기서 나는 또 하나의 라면 신세계를 맛본다
도시락면!! 물을 부어 먹는 사발면의 출현은
그 당시 우리에겐 신박한 추억의 먹거리다
지금은 어느새 라면 종류가 수도 없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엔 참 특별한 우리들의 간식이었던 기억이다
그래도 내 입맛은 롤라장에서 맛본 인스턴트 라면보다 내게는 오빠가 아까 사주었던 꽤 비싸 보였던 커다란 그릇에 담긴 홍콩 라면 나에게 홍콩 라면은 그렇게 헤어짐에 아픈 추억을 선물하고 떠났다
홍콩 라면 먹고 롤라장도 가보고 오빠랑 신나게 놀았던 그해 여름 ᆢ그해 여름의 끝자락에
나와 둘도 없이 친한 엑스 언니와 그 오빠는 나 몰래 사귀고
있었다는 것 ᆢ어린 나를 귀여워했던 오빠는 상처 받지 않도록 오랫동안 나와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를 해주었던 것이었다
참 나엔겐 달콤하게 아픈 배려였더랬다
아직도 기억해낼 수 있는 라면의 촉촉함과 치아에 느껴지던 사각 한 숙주의 치감은 오래도록 잊고 있던 어린 감성의 나를 불러내어주었다
불현듯 떠오른 라면 한 그릇은 꿈을 위해 미친 듯 달리는 나는 비로소 멈추고 찬찬히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우리는 눈만 뜨면 먹고 마신다
매일 먹는 삼시 세 끼에 무슨 의미를 두겠냐마는
그래도 한 끼 밥에 또는 한 그릇 국수에도 잃어버리고
있던 사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 추억도 함께 떠올라 어떤 음식은 기쁘게 먹고 어떤 음식은 목이 메게 울컥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에게 놓인 복잡한 음식문화 그렇게
문화적 장르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음식을 너무 한 끼 때우는 생명연장의 수단으로써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해보고 ᆢ
음식을 만들 때 먹는 이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기억의 맛을 만들어 내고 싶기도 하고
언젠가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 ᆢ내가 만든 음식으로
마음을 치유받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식당을 하고 싶다
나는 늘 손님들께 음식으로 속삭여 주고 싶다
박소진 요리사의 음식과 함께 추억을 팝니다
오늘 혼자 혹은 함께 오신 분들과 오랫동안 간직할
한 끼 밥을 나누세요 ~~
이제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오늘 눅눅하다
비가 오면 빗소리는 눅눅한 내 마음에 어린 시절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을 꺼내 주었고
그 기억 속에 아쉬운 헤어짐에 아리고 아팠고
믿었던 엑스 언니에게 배신감에 몸부림쳤지만 훗날 소심 한복 수도 조금 했던 것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했었던 예쁜 추억을 꺼냈다
낡아빠진 추억의 오빠와 오랫동안 내가 찾아주길 기다렸던 잃어버린 한 끼 라면 한 그릇이 있었다
어느덧 롤러스케이트 타던 소녀가 그만한 소녀를 낳아서
키우고 있다
요즘 다시 레트로 문화로 뉴트로 롤라장이 생겼다
딸아이와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까르르 넘어가며 울 엄마 잘 타네 ~
엄마 날라리였어 ᆢ 일진이었어하며 까불거린다
속으로 나 혼자 큽큽 웃음이 터졌다 그 시절 난 뭐였을까
이건 너한테 비밀인데
ㅋㅋ 사실 롤라장에는 춤추러 간 거였지 ~
롤라장에 롤러스케이트 타러 오는 애들을 뭐 ᆢ ㅋ
내 아름다운 추억 속에 그 오빠 들은 어떤 모습으로
늙어 가고 있을까
정말 꿈같이 세월이 흘렀지만 기억 속에 맛있었던
추억 한 끼 ~ 어느덧 우린 기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었다
당신의 잃어버린 한 끼는 안녕하신가요?
촉촉이 젖어오는 이 계절에 추억한 끼 찾아 나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