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이른 아침 바람은 얼굴에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나와의 하루를 시작한다
바람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소리 없이 나를 지켜왔더랬다
눈부신 햇살 같던 십 대를 ᆢ그 햇살에 농익어 터질 듯이
영글었던 핑크빛 복숭아 같은 이십 대를
나를 농익혀주던 태양을 숙주 삼아 집어삼키고 불타던 삼십 대를 건너서 불혹이라는 말 뒤로 숨어서 내의 지 난 시절 불탓던 시간들을 위로하는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ᆢ
바람은 어떠한 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고 바람의 향기만 느낄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멀리서 지켜주었다
더울땐 머리카락을 날려 시원하게 ᆢ
슬플땐 눈물도 말려주면서 늘 함께
나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바람은 다 보았겠지
세상 복잡한 내 인생사를
어느 땐 따뜻한 온풍으로 나를 만지고
어느 땐 세 차고 매섭게 나를 몰아치다가
이내 순풍으로 바뀌어 나를 달래기도 했더랬다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을지 그 바람은 내게 더없이
새삼 사무친다
아무 조건 없이 내 곁에서 바람은 때론 연인처럼 따뜻하게 때론 삶 의치 열함에 땀을 차가운 바람으로
식혀주기도 하면서 이내 자기 소명을 다하고는
사라진다
바람의 맛은 어떤 맛일까? 입을 버려 크게 한입 베어 물어본다
# 바지런한 준비
코로나19 라는 악몽같은 재앙 의 시간을 견디며
봄을 완벽하게 느껴보기도 전에 우리는 어느새
다가올 오뉴월 마른장마를 준비한다
지루하리만큼 습한 장맛철에 우리는 바람을 기다리면서 사월이 되면 볕이 좋을 때 이것저것 여름 장마를 버텨낼 저장음식들을 준비한다
예전엔 짜다고 안 먹었던 것들ᆢ짠지 오이지 무 간장 장아찌 여름김치와 피클 그것들이 이제는 내게 보물단지가 되어
축축한 여름 우리의 식탁을 빛내준대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을 두루 준비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왜 저리 힘들고 답답하게 사실까 했는데 ᆢ
흉보면서 배운다고 이제는 내가 그 짓을 해대고 있었다
농부가 봄볕에 그을려가매 심었던 여름 푸성귀가
내손에 들어오기까지 난 그 과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귀한 것이 내손을 거쳐 음식으로 바뀔 때
어떻게 농부가 키워냈는지 알게 된다
농부의 손이 한번 더 간 그 작물은 음식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특히 저장식품을 만들어보면 진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쉬 무르지 않는 것 ᆢ최소한의 양념을 했을 때
본연에 맛을 더 드러내는 것으로 말이다
요즘은 오이나 당근에서 예전에 맡아보았던
향이나 맛이 덜하다 특히 당근은 향도 맛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ᆢ
당근은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뿌리채소이다
향이 진했다 아릿한 맛도 난 좋았다
색이 이뻐서 좋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들이 당근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며 강력하게 먹이려고 노력하셨지만 ᆢ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근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근의 품종이 들어오면서 아마도 그렇게 홍보해서
엄마들의 당근 사랑이 시작되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 식당에서 잔반을 보면 당근들을 골라내시는
분들이 많다
이들도 어릴 때 엄마한테 당근의 전설에 대한 세뇌 와 함께
안 먹었을 때는 가차 없이 가해 지는 등짝 스매싱을 경험 해
봤을 듯싶다
어쩌면 우리는 당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당근을 강요하는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당근과 의적이
되지 않았을까?
당근은 그렇게 우리들의 식탁에 공공의 적이 되어갔다
사실 당근은 건강음료로 갈아 생으로 먹으라고도 하지만
생으로 먹으면 무와는 다른 게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또 다른 요리법으로 지용성 비타민 A를 얻어 눈에 좋은 성분을 얻기 위해
볶아 먹으라고 도하지만 사실 부재료로써의 역할이 다 인 것이다
나는 당근을 좋아하기에 당근의 다양한 쓰임새와 역할을
공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썩 그렇게 인기 있는 채소는 아닌
당근이지만 주변 이웃 나라 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식재료 임에 분명하기에 이에 또 다른 반기를 들어 본다
오죽하면 일본 사람들은 당근의 이름을 닌징이라 칭했을까
닌징은 인삼이라는 뜻인데 당근을 인삼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여서 아닐까 싶다
중국 또한 당근이 요리마다 빠지지 않고
장식에도 많이 쓰여 당근의 역할 비중이 크다
아시안 음식들에도 빠지지 않는 당근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예쁜 색이 있는 채소가 흔하지 않았던 터라 주홍빛 당근을 더 예뻐라 했을게다
그래서 당근은 부재료나 장식적인 의미로 전락
그 부분이 아쉬워 나는 당근을 놓지 못한다
향도 뭣도 사라진 당근을 많이 활용하고 싶다
지금은 컬러푸드니뭐니 해서 알록달록 과채들이
넘쳐난다 때로는 과하다 싶기도 하게 끊임없이
품종들이 개발되고 쏟아져 나온다
사람 맘이 간사한지라 토종들이 사라져 가는 것도 아쉽고 새로운 게 나오는 건 또 써 보고 싶고
우리에게 자꾸 잊혀가는 옛 음식 들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전해질까 노력해야 되는데 ᆢ
자꾸만 새로운 맛에 탐닉에 빠져들곤 한다
서고동 에서 수작반상 이라는 이북가정식 한식당을
운영 했었다
연예인들이 알음알음 소개해서 꽤 많이 알려진 집인데
한식을 제대로 즐기는 분들이 참많구나 하고 느꼈다
식당에 오시는 손님들도 연세 많으신 분들이 오히려
조미료가 안 들어간 밍밍한 맛을 힘들어하신다
그러나 기분 좋은 일은 젊은 세대의 친구들이 오히려
맛의 깊이를 알아주고 엄지를 세워준다
요즘 사람들 단짠단짠이니 하는 은어들이 나올 만큼
간이 세고 달콤한 음식을 탐닉하는 듯하여도 아직은 음식 본연의 맛과 향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힘이 났다
한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맛을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손님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우리 음식을 소개해드린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설명해주시는 도슨트처럼 푸드 도슨트를 해드리는 거다
나는 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니 내 음식 설명을 잘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단골손님들께서 친구에게
우리 식당을 소개하시고는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
손님들이 내 음식의 콘셉트를 완벽히 이해하시고
나보다 더 고급진 미사여구의 단어들을 입혀 설명해주시면 나도 모르게 더 귀를 쫑긋 세우고 음식 하는 손길에 더 섬세함과 정성을 쏟게 된다
요리사는 스스로가 자주 손님이 되어야 한다
내가 늦게 요리사가 되고 요리에 입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요리사였던 시간보다
고객이었던 시간이 훨씬 더 길었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손님의 입장에서 돈을 지불하고 매식을 해봐야
내 요리에 진심을 부끄럼 없이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요리사의 곁에는 내 음식을 가장 맛있게 최선을 다해 먹어주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격 없이 비판해주고 끝없이 칭찬해주는 그런 친구 말이다
섣부른 조언이나 충언으로 요리사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보다는 가족과 같은 사이임에도
항상 돈을 지불하고 내요리를 사 먹어주고 평을 남겨주는 친구
나는 이미 그런 친구와 손님을 충분히 가졌다
부자다 ᆢ
#합정역 9번 출구 도시락
오늘 바람이 부니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바람이 부는 날 불쑥 찾아왔더랬다
그 후로도 틈틈이 서울서 청주를 꽤 먼길을
동네 마실 나오듯 찾아왔다가는 스윽 가고는 했다
나도 그 친구를 보러 서울을 오가며 ᆢ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조금씩
꾸깃꾸깃 싸 들고 다녔다
뭐든 내가 주는 것들을 맛있어해 주고 놀라워해 주고
독려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나 그 친구를 위한 도시락들을 싸는 일은 정말
재미난 일이었다
토끼 같은 내 새끼들의 도시락을 싸는 것만큼이나
귀하게 쌋었다
먹는 친구도 내 도시락을 그리 귀하게 대했다
늦은 밤 퇴근해서 이미 식어버린 그 도시락을
새벽녘이라도 버리지 않고 먹어냈다
미련하다 ᆢ퉁 박도 주었더랬다
나는 그런 시간들로 인해 저 나락 밑에 떨어져 있던 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에게 합정은 바람이 몹시 부는 기억이다
더운 바람이 휭휭불어대던 그날 나는 합정역 9번 출구의 기억이 그리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잃어버린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고 그 밥 한 끼는 내 인생에 소중한 기록이 되었다
밥을 맘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을 챙기는 내 동생이자 친구인 그녀에게 나는 오늘 잃어버린 밥 한 끼를 챙겨주고 싶다
끼니가 그저 곯은 배를 채워주는 게 다가 아리란 걸 일깨워주고 음식으로 다 야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친구는 향수 냄새보다는 늘 맛있는 냄새가 났고
다른 배고픈 이들을 보듬어 줄줄 아는 친구였다
나는 오랫동안 이 친구 와의 추억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내 삶에서 무게 없이 생각 없이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살았단 그녀와의 4년
오늘 내가 찾은 잃어버린 한 끼는 나와 그녀의 짧은 만남들을 이어주던 식어빠진 도시락이다
그녀에게 부끄럽게 내밀었던 그 도시락은 오랫동안
수줍은 마음을 담은 작은 그릇 이었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도 보잘것없던 그 도시락 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
#기억은 뭐 ᆢ내 것
오늘도 치열했을 당신의 시간들ᆢ
고소한 냄새 풍기는 밥 한 끼 먹고 밥 벌기 위해 부지런했던 당신의 퉁퉁부은 발ᆢ때론 타인으로부터 상처 입은 마음
뒤적뒤적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아픈 단어 골라 퇴근길
창밖으로 던져 버리 시고 나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시길
그러다 문득 배가 고프고 생각나는 친구가 있으면
그 발길 그대로 돌려 친구에게 기억에 함께했던 따뜻한
밥 한 끼 권해보세요
당신의 잃어버린 한 끼는 안녕하신가요?
환자식 레시피
( 신장환자의 특성상 수분 및 체중관리가 중요해요
또한 영양과잉도 부족도 안 되는 애매한 섭생의 법칙으로 먹는 것에 대한 제제가 있으니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늘지만 사실 입맛이 없어 맛 도잘 못 느껴요
그래서 맛과 영양보다는 보고 즐기는 식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온전히 제 생각 ^^; )
내 영혼의 당근 수프
( 당근은 포타슘 제거를 위해 끓는 물에 설탕을 1작은술 넣으시고 데쳐서 찬물에 2시간 담그세요)
당근 2 개
닭가슴살 2쪽
양파 1개
대파 1대
간 마늘 1큰술
집간장 2 큰술
소금 1작은술
후추 1꼬집
생들기름 2 큰술 (일반식은 버터 2큰술)
물 1리터
두유 1컵 (일반식은 생크림 1컵 )
조리법
1 물 1리터에 집간장 2 큰술 넣고 닭가슴살 당근을 삶아 믹서에 갈아준다
2 대파와 양파는 곱게 다진다
3 팬에 생들기름을 두르고 대파 양파 간 마늘을 넣고 볶는다
4 1번과 3번을 섞고 두유를 부어 뭉근하게 끓인다
5 소금 후추 간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