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김장철이 되면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설레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우리 집은 김장철이 되면 일도와 주실 분들이 며칠씩 묵으시러 오셨다 김장도 김장이지만 겨우내 나물 말려서 묵나물 만들기 서부터 감 말리기 생강차 유자차 모과차 각종 장아찌 항아리에 홍시 안치기 무말랭이 육포 만들기 굴비 말리기 장작패기 등등등 겨우살이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나는 메주 빚기 하는 날을 좋아했다 메주콩 삶는 냄새가 좋았던 것 같기도 했고 타닥타닥 짚불과 장작 타는 냄새를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하고~~ 사우디 갔다 온 작은삼촌이 콩이 푹 삶아지면 한 줌 건져서 우리 큰 이모부가 미군부대서 가져다주신 케첩에 마가린을 한 숟가락 넣고 보글보글 끓인 콩 스튜 아마도 지금의 베이크드 빈스를 만들어주셨던 듯싶다 난 지금도 그 추억의 맛으로 가끔 깡통 베이크드 빈스를 즐긴다
우리 때는 아플 때면 얻어먹을 수 있는 깡통 과일도
인기였었다
어릴 때 열나고 아프면 할아버지가 사다주신 깡통
깐 포도 간 슴베 복숭아 간 슴베 ~ 그땐 그렇게 불렀지 김장하는 날은 김장보다 일꾼들의 먹거리 준비에 더 많은 공을 들이시는 듯했다 막걸리 항아리와 맛난 먹거리가 마당 멍석에 차려지면 덩달아 강아지와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났었다 겨울의 초입에 우리는 이 행사로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이렇듯 우리에게 김장은 겨우살이 준비와 포근함을 풍요로운 느낌을 안겨준다 음식은 우리에게 단지 고픈배를 해결해주고 살기 위한 연명 수단 많은 아닐 것이다 잃어버린 한 끼를 연재하다 보니 진짜 생각나는 음식이 있었다 김장을 하면 당연히 익은 김치들을 처리해야 독을 비울 테니 묵은 김치로 만드는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김치 국수ㆍ김치전 ㆍ두부 김치 ~~ 그중에 나는 돼지고기랑 김치 들기름을 넣고 밥을 지은 돼지고기 김치밥을 최고로 여긴다 김치밥에 돼지고기를 넣으면 구수한 맛이 나는데 양념장에 비벼 짜조름하게 먹다가 코가쩡한 동치미를 한입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 맛있는 맛을 찾아내어 만들어 먹는 문화를 가졌는지 ᆢ신기할 뿐이다 아마도 내가 요리사가 되어야지 하고 맘먹게 된 이유도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어느덧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김장이라는 발효과학이 만들어낸 우리네
정겨운 겨우살이 준비 김장에는 굴 또한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나는 굴을 엄청 좋아하는데 어려서부터 많이 먹어서인 것 같다
이북사람들은 굴요리를 즐기지는 않아 김장엔 쓰지 않고 주로 생낙지 (이북사람들은 오징어를 낙지라고 부른다 )
명태살 조기살 들을 다져서 젓갈 대신 김치 양념으로 쓴다 때가 되면 착착 먹어줘야 했던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 함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 년 내내 기다렸던 김장 속 만드는 시간 다른 때도 물론 무채 속을 버무려해 먹어도 김장 때 하는 무채 속 맛을 못 따라온다
이북 김치에는 무채를 넣지 않고 갈아서 넣는 특징이 있는데
남한에 내려오셔서 돼지 수육에 굴에 싸 먹는 보쌈을
먹기 위해 무생채를 하신다고 하셨다 노랗게 잘 절여진 배춧속에 빨간 무채와 싱싱한 굴을 턱 얹어 꼭꼭 싸매어 기다리고 있던 내입에 쏙쏙넣주시던 엄마 ~ 배탈 난다며 그만 먹으라 해도 그 매운 무채 속 쌈은 왜 그리 칼칼하고 맛나던지 어릴 때부터 칼칼하고 매운 걸 좋아했던 나는 커서 술을 들이붓는 술꾼이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해장도 매캐한 걸로 해야 속이 풀린다
겨울준비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난로 설치인데 연탄난로가 마루에 설치되면 주전자에 귤껍질 차가 보글보글 끓어대기 시직 하고 엄마는 부지런히 묵은 스웨터를 풀어 뜨건 물을 담은 주전자 주둥이로 풀어낸
헌실을 빼내서 감으면 라면 갔던 실들이 펴지면서 눌렸던
올들이 보송보송 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실로 목도리와 장갑을 뜨신다 추웠던 그 마루장도 그 분위기도 내 기억엔 어찌 그리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건지 ᆢ아무래도 잘못된 기억 같기만 하다 겨울 먹거리만 준비하고 춥고 길었던 겨울을 깔고 들어앉으면 기나긴 겨울도 견딜만한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없는 시절에도 그 시절 우리 집의 겨울 먹거리의 다양함이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갱엿부터 튀밥으로 버무린 강정부터 고구마 곶감 깨강정 등등 부지런한 엄마의 손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겨울의 혹한 추위에도 마당 한편의 김치움 속의 깡깡언 항아리 속에 뽀얀 속살 살얼음 동치미 꺼내어 동치미 국수도 말아먹고 노랗게 삭인 무청김치 치를 겨울 곳간에서 꽝꽝 언고구마를 살살 구워 무청김치 척척 얹어 먹으면 언 고구도 그 또한 겨울 별미 그때의 그런군입거리가 별미가 되어 오히려 그때의 그 맛을 기억하고 유추해 내더라도 ~예전의 맛만큼은 아니다 아마도 그 시절 아랫목 보들보들한 밍크 이불에 발 넣고 꼬물꼬물 낄낄대던 가족이 없어서 일듯 싶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하나둘 보들보들 포근한 커다란 목단꽃무늬의 빨간 밍크담요 속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우리 엄마의 외로움은 큰 이불로도 다 덮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셨을 듯싶다 그렇게 우리 사 남매는 엄마의 애정과 뼈와 살까지 아낌없이 나눠가지고 훌훌 엄마 곁을 떠났다 이제는 그 시절의 우리보다 더 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 우리들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가끔은 장롱 한편에 시집올 때 해왔던 목화솜 이불을 깔고 아이들과 함께 누워본다 목화솜 이불은 울 엄마가 손수 지어주신 거라 이불장을 차지하고 있어도 안 버리는 내 소중한 보물이다 이렇게 큰집에 살고 있어도 예전처럼 마음이 풍요롭지는 않다 작은집에서 복작복작 거리는 행복함이란 그때는 알 수 없음 이어라 최근에는 쌍문동을 다녀왔다 골목길마다 김장을 하시려는지 여기저기 배추 무를 쌓아두신 모습에서 예전 생각이 더 많이 났었다 나는 도봉동에서 태어났다 나자마자 의정부로 가서 기억엔 없지만 창동 쌍문동 수유리 미아리는 아직까지 지난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골목이 많이 남아있다 김장을 할 때도 서로서로의 집을 오가며 품앗이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골목길 옛날 빵집도 기웃거리다
벹엘 제과점이라는 추억의 빵집 이름이 정겨워서 김장할 때 나눠먹을 옛날 샐러드 빵 곰보빵 크림빵 매머드 빵들을삿다 빵만 드시는 백발의 할아버지와 김장의 추억도 두런두런 나누고 돼지고기 김치밥을 아시는 할아버지와 그 맛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신나게 나눴다 쌍문동 이름 모를 골목에 옛날 빵집 벧엘 제과 할아버지는 빵집을 나서는 나에게 저기 하시더니
급히 빵 두서너 개를 집어 비닐에 담아 꾸깃꾸깃 넣어주신다 할아버지 생각나고 보고파서 코끝이 아파오고 목이 살짝 메었다 내가 태어나고 열한 살 될 때까지 고작 십여 년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이렇게 평생을 꺼내볼 요리 일기가 될 줄을 몰랐다 오늘따라 할아버지 좋아하시던 돼지고기 김치밥이 몹시 떠오릅니다 이번 김장날에는 돼지고기 김치밥이랑 칼칼한 동태찌개랑 잔뜩 끓여두고 어릴 적 김장 잔치처럼 떡 벌어지게 김장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힘든 날이면 할아버지가 내입에 한수저 털어 넣어주던 설탕도 한 숟가락 먹고 싶습니다 사각사각 씹히던 설탕가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가끔 꿀이나 설탕을 한 숟가락씩 퍼서 입에 쏙 넣어주시면 할아버지의 소처럼 큰 눈을 과 얼굴 마주 보면서 우물우물 녹이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달콤하기만 합니다 오늘의 잃어버린 한 끼는 돼지고기 김치밥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잃어버린 한 끼는 안녕하십니까? 추억을 더듬어 그한끼 찾아보세요 같이했던 추억의 그 사람도 함께 떠올려보시고요 ~~ 밥으로 소통하는 밥티스트 박소진 요리사의 올해 김장도 그리움을 켜켜이 발라 속이 꽉 찬 맛난 김장을 함께 할 것